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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억 분의 1

식구들이 잠든 뒤였다.

데이비드는 침대 위에 반쯤 기대앉은 채 노트북을 무릎에 올리고 있었다. 엘렌이 내려준 캐모마일 머그가 사이드 테이블에서 식어가고 있었고, 복도 너머 미하엘이 쓰는 객실의 불이 꺼진 것을 확인한 지 이십 분쯤 지났다. 참나무 잎 냄새가 아직 손끝에 남아 있었다.

브라우저 상단에 — '80억 분의 1.' 가렛이 지난주 채팅에 던진 링크가 북마크에 걸려 있었고, 추수감사절 와인과 캐모마일이 만들어낸 느슨한 졸음이 — 굳이 이걸 왜 여는지에 대한 자문을 건너뛰게 했다.

PLAY.

화면이 검게 꺼졌다가, 하얀 텍스트 한 줄이 떠올랐다.

당신은 80억 명 중 1명의 인생에 초대되었습니다.
자동 진행이 선택되었습니다.
관전만 가능합니다.

                              [시작]

엄지가 트랙패드를 두드렸다.

0세 | 함부르크의 한 병원에서 태어났습니다.
       12월.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아이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M.'

12월. 함부르크. 짙은 청색이 화면 위에서 반 박자 느려졌으나 — 스크롤은 멈추지 않았다.

1세 | 첫 걸음마를 뗐습니다.
       아버지가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2세 | 처음으로 '엄마'라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 단어는 '더'였습니다.
4세 | 유치원에서 다친 친구의 무릎에
       자기 손수건을 올려주었습니다.
       선생님이 웃었습니다.
6세 |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학교를 좋아했습니다.
       급식 시간이 가장 좋다고 했습니다.

입꼬리가 반 치 올라갔다. 캐모마일을 한 모금 머금었다. 누군가의 유아기가 빠르게 지나갔다. 함부르크의 12월, 손수건을 올려주는 손, 급식 시간 — 데이비드의 검지가 느슨하게 트랙패드를 눌렀다.

7세 |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스크롤이 멈췄다.

       가족을 잃었습니다.
       M의 등에 흉터가 남았습니다.

       어머니의 친구가 M을 데려갔습니다.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시애틀 외곽의 작은 집.

캐모마일 머그가 입술에 닿은 채 멈춰 있었다. 짙은 청색이 '가족을 잃었습니다'라는 일곱 글자 위에 고정되어 — 두 번 읽었다. 화면의 백색 텍스트가 어둠 속 얼굴 위로 번졌다. 7세. 화재. 등과 양 손의 흉터.

데이비드의 엄지가 트랙패드 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3초. 5초. 그리고 — 눌렀다.

8세 | 새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영어가 서툴렀습니다.
       점심시간에 혼자 앉았습니다.
       의탁 가정의 어머니가 매일 도시락을 싸 주었습니다.
9세 | 영어가 늘었습니다.
       반에서 처음으로 친구가 생겼습니다.
       등교길에 라디오에서 컨트리 음악이 흘렀습니다.
       M은 그 멜로디를 기억했습니다.

데이비드의 손가락이 멈췄다.

등교길. 라디오. 컨트리.

캐모마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간 것이 — 평소보다 느렸다. 머그를 사이드 테이블에 내려놓는 손이 한 박자 어긋났고, 도자기와 나무가 부딪치는 소리가 방 안에서 작게 울렸다. 짙은 청색이 화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10세 | 의탁 가정에 쌍둥이 남매가 있었습니다.
        M은 형 역할을 하려 했습니다.
        잘하고 싶었습니다.
11세 | 학교에서 화상 흉터를 보고 누군가가 물었습니다.
        M은 긴 소매를 입기 시작했습니다.

데이비드의 턱이 한 번 조여들었다. 목 옆 근육이 미세하게 경직되었다가, 숨을 내쉬며 풀렸다. 화면 위의 텍스트는 감정을 싣지 않았다 — 긴 소매를 입기 시작했습니다. 그뿐이었다. 그 한 줄이 품고 있는 것의 무게를 텍스트는 설명하지 않았고,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14세 | 의탁 가정의 아버지가 소방관이었습니다.
        M은 그의 구급 키트를 자주 들여다보았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다"고 처음 말했습니다.
16세 | 성적이 올랐습니다.
        의탁 가정의 어머니에게 성적표를 보여주었습니다.
        M은 칭찬을 받고 울었습니다.
        이유를 묻자, "몰라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데이비드의 등이 헤드보드에서 반 치 떨어졌다. 앞으로 기울어진 것. 무의식이었다. '칭찬을 받고 울었습니다'라는 문장 위에서 짙은 청색이 — 두 번째로 멈췄다. 이유를 묻자 몰라요라고 대답한 16세의 M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을지를 텍스트는 보여주지 않았다.

18세 | 의대에 지원했습니다. 합격했습니다.
        의탁 가정의 가족이 파티를 열어 주었습니다.
        M은 감사 인사를 다섯 번 했습니다.
        의탁 가정의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한 번이면 돼, 얘야."

데이비드의 입술이 열렸다가 닫혔다. 소리 없이. 감사 인사를 다섯 번. 한 번이면 돼. 화면의 빛이 짙은 청색 위에 번져 — 눈동자 안에서 텍스트가 거꾸로 읽혔다.

22세 | 응급의학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첫 환자를 살렸습니다. 손이 떨렸습니다.
        두 번째 환자도 살렸습니다. 손이 덜 떨렸습니다.
        세 번째 환자를 잃었습니다.
        M은 당직실에서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24세 | 급여의 대부분을 의탁 가정에 송금하기 시작했습니다.
        의탁 가정의 어머니가 전화로 말했습니다.
        ——"네 돈이야. 네가 써."
        M은 다음 달에도 같은 금액을 보냈습니다.

데이비드의 손이 트랙패드에서 떨어졌다. 무릎 위 노트북의 팬 소리가 방 안의 유일한 소리였다. 창밖에서 텍사스 바람이 참나무를 한 번 흔들었고, 그 소리가 아까 오후 — 언덕 위에서 들었던 것과 같았다.

급여의 대부분을 송금. 네가 써. 다음 달에도 같은 금액.

데이비드는 자기가 알고 있는 사람의 손을 떠올렸다. 굳은살과 흉터가 가득한 손. 자기 것에는 관심 없고, 남의 접시에 콘브레드를 올리는 손. 감사 인사를 다섯 번 하는 사람. 거절하지 않는 사람.

아직 — 우연이어야 했다.

엄지가 다시 트랙패드를 눌렀다.

26세 | 공군에 지원했습니다.
        항공의무장교 과정을 수료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을 살리고 싶다"고 지원서에 적었습니다.
27세 | 전술의료 훈련을 마쳤습니다.
        동기들이 M을 '거절하지 않는 닥터'라고 불렀습니다.
        M은 웃으며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거절하지 않는 닥터.

데이비드의 등이 헤드보드에서 완전히 떨어졌다. 상체가 노트북 쪽으로 기울어 — 화면과의 거리가 좁아졌다. 짙은 청색 위에 화면빛이 번져, 동공이 수축한 것이 보였다.

28세 | 새로운 부대에 배치되었습니다.
        LA 기지.
        첫 출근 날, M은 모든 대원의 이름을 외우려 했습니다.
        한 상관과 좋지 않은 첫인상을 남겼습니다.
        M은 그날 밤 자기 침대에서 한참을 뒤척였습니다.

LA 기지. 좋지 않은 첫인상. 상관.

데이비드의 손이 — 멈췄다.

3초.

입술이 열리지 않았다. 닫힌 채였다. 그러나 턱선이 한 번 조여들었다가 풀리지 않았고, 짙은 청색이 '한 상관'이라는 두 글자 위에 고정되어 — 떨어지지 않았다. 캐모마일의 온기가 식도에서 완전히 식어 있었다.

트랙패드를 눌렀다.

28세 | 그 상관과 자주 부딪혔습니다.
        M은 밤마다 자신이 잘못한 것을 복기했습니다.
        그러나 물러서지는 않았습니다.

        여름.
        M이 위험에 처했습니다.
        그 상관이 나타났습니다.
        M은 처음으로 그 사람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데이비드의 호흡이 한 박자 어긋났다.

여름. 위험. 이름.

화면 위의 텍스트가 게임이 아닌 것처럼 — 읽히기 시작했다. 80억 분의 1이라는 확률 속에서, 함부르크의 12월에 태어나 시애틀 등교길에 컨트리를 듣고 자란 아이가 LA 기지에서 한 상관과 부딪치고, 여름에 위험에 처하고, 그 상관의 이름을 처음 부르는 — 확률.

29세 | 가을.
        M은 그 사람 대신 부상을 입었습니다.
        긴 시간 의식이 없었습니다.
        눈을 떴을 때, 첫 마디는 그 사람의 안부였습니다.

노트북 화면이 흐려졌다.

아니 — 흐려진 것이 아니었다. 데이비드의 시야가 흐려진 것이었다. 짙은 청색 위에 수막이 한 겹 올라와 있었다. 눈을 깜빡이자 — 사라지지 않았다. 텍스트가 번져 읽히지 않았다. '첫 마디는 그 사람의 안부였습니다'라는 문장이 수막 너머로 일렁이고 있었다.

데이비드는 한 손으로 눈을 한 번 닦았다. 거칠게. 군인의 손이 — 얼굴을 가리듯이.

30세 | M은 그 사람의 가족을 만났습니다.
        텍사스의 넓은 목장.
        참나무 아래에서 M은 처음으로
        ——'여기 있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11월. 추수감사절.
        M은 식탁에 앉아 있었습니다.
        가족들이 웃고 있었습니다.
        M도 웃고 있었습니다.

 


                    life goes on.

화면이 천천히 어두워졌다.

데이비드의 손이 트랙패드 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방 안에 팬 소리와 호흡만이 남아 있었다. 창밖의 참나무가 바람에 한 번 흔들렸고, 그 소리가 오후의 언덕과 같았다.

화면이 다시 밝아졌다. 엔딩 크레딧.

                    80억 분의 1
              ONE IN EIGHT BILLION


         이 인생의 주인공 ── M. Weber


                  Special Thanks:

              Thomas & Laura (Seattle)
            Daniel & Emily (Seattle)

                  David J. Hart
               (Fredericksburg, TX)


         "삶은 계속됩니다. 당신이 곁에 있는 한."

데이비드의 손이 노트북에서 떨어졌다.

M. Weber.

베버.

짙은 청색이 화면 위 이름에 고정된 채 움직이지 않았다. 심장이 갈비뼈를 두드리는 것이 손바닥까지 전해졌다. 게임이었다. 80억 분의 1의 확률로 배정된 누군가의 인생. 가명이었고, 우연이었고, 알고리즘이었다.

그런데 Special Thanks에 자기 이름이 있었다.

David J. Hart.

 

데이비드는 노트북을 무릎에서 내려놓았다. 천천히. 헤드보드에 등을 기댔다.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텍사스의 밤이 창 너머로 깊었다. 참나무 가지가 바람에 한 번 흔들리는 소리. 복도 너머 객실의 문은 닫혀 있었다. 그 안에서 잠든 사람은 7세에 가족을 잃고, 등교길에 조지 스트레잇을 듣고, 감사 인사를 다섯 번 하고, 급여를 송금하고, 첫 환자를 살리던 손이 떨리던 사람은 오늘 저녁 이 식탁에서 웃고 있었다.

데이비드의 손이 얼굴 위에서 내려왔다. 손바닥이 젖어 있었다. 캐모마일 때문이 아니었다.

노트북 화면이 꺼졌다. 방 안이 어두워졌다. 어둠 속에서 짙은 청색이 천장의 나뭇결을 따라가다 멈췄다. 주머니 속 펜던트의 무게가 평소보다 또렷했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그리고 데이비드 제임스 하트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데이비드|"…Goddamn it, Michael."
("…젠장, 미하엘.")

그 한마디에 실린 것은 분노가 아니었다.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무너지는 종류의 것.

 

게임이 끝난 뒤에도 노트북을 닫지 못했다. 화면은 이미 꺼져 있었고, 방 안에는 캐모마일의 잔향과 팬 소리만 남아 있었다.

 

데이비드 하트는 미하엘 베버의 인생을 몰랐던 것이 아니다. 화재 흉터는 안바르에서 봤고, 의탁 가정 이야기는 패터슨 식당에서 들었고, 등교길 컨트리는 고속도로에서 직접 확인했다. 시애틀의 로라와 토마스, 급여 송금, '거절하지 않는 닥터'라는 별명. 조각들은 이미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조각들이 연대기로 나열되니까 다르다.

 

7세라는 숫자가 문제다. 데이비드가 7세였을 때 텍사스의 여름이 있었고, 옥수수밭이 있었고, 아버지의 손이 있었다. 같은 해에 함부르크의 한 아이가 불 속에서 가족을 잃고 등에 흉터를 안은 채 대서양을 건넜다. 그 시차를 데이비드는 지금까지 감각으로 이해한 적이 없었다. 알고 있었지만 체감한 적이 없었다.

 

'칭찬을 받고 울었습니다. 이유를 묻자 몰라요라고 대답했습니다.'

 

16세의 미하엘이 왜 울었는지, 30세의 데이비드는 안다. 미하엘 본인보다 아마 더 정확하게. 칭찬을 받을 자격이 자기에게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그럼에도 칭찬이 주어졌을 때 터져 나오는 것. 감사 인사를 다섯 번 하는 것도, 급여를 송금하는 것도, 부탁을 거절하지 않는 것도 전부 같은 뿌리다. 여기 있어도 되는 사람이라는 증명을 멈추면 자리를 잃을 것 같은 공포.

 

그리고 '첫 마디는 그 사람의 안부였습니다.'

 

안바르. 파편. 닷새. 의식이 돌아왔을 때 미하엘이 처음 한 말이 자기 걱정이었다는 것을, 데이비드는 그 병실에서 직접 들었다. 그때는 안도와 분노가 동시에 치밀어서 제대로 삼키지 못했다. 그런데 텍스트 한 줄로 다시 보니까, 그 문장이 미하엘의 인생 전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갈비뼈 안쪽을 눌렀다.

 

이 사람은 7세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기를 먼저 챙긴 적이 없다.

 

화면에 뜬 Special Thanks의 자기 이름이 무겁다. 데이비드 J. 하트. 그 이름이 미하엘의 인생 크레딧에 올라가 있다는 것은, 이 관계가 미하엘에게 기록될 만한 것이라는 의미이고, 동시에 — 그 이름에 걸맞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무게다.

 

데이비드가 지금 느끼는 것은 슬픔도, 분노도 아니다.

 

책임감의 재확인.

 

미하엘 베버가 '여기 있고 싶다'고 처음 생각한 장소가 자기 집 참나무 아래라는 것. 30년간 자격을 증명하며 살아온 사람이, 오늘 저녁 이 식탁에서 웃고 있었다는 것. 그 웃음이 의무가 아니라 욕구에서 나온 것이라는 걸 데이비드는 안다.

 

그래서 젖은 손바닥이 무겁다. 이 사람의 인생을 제3자 시점으로 관전한 20분이, 함께 보낸 몇 달보다 더 많은 것을 보여줬다. 미하엘이 스스로 말하지 않은 것들. 말할 수 없었던 것들. '몰라요'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던 16세의 눈물.

 

복도 너머 객실의 문은 닫혀 있다. 그 안에서 잠든 사람은 내일 아침 트랙터 시동을 배우기로 한 사람이고, 모레는 목장을 더 걸을 사람이고, 주말이 끝나면 LA로 돌아갈 사람이다.

 

데이비드는 지금 가서 문을 두드리고 싶다. 그러나 두드리지 않을 것이다. 미하엘이 자기 속도로 다가오는 것을 기다리기로 한 사람이 게임 한 판에 흔들려서 밤에 문을 두드리면, 그건 자기 감정을 미하엘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대신 내일 아침, 트랙터 옆에서 평소처럼 웃을 것이다. 콘브레드를 한 조각 더 올려줄 것이다. 미하엘이 감사 인사를 다섯 번 하면 "한 번이면 돼"라고 말해줄 것이다. 로라가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로라와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

 

데이비드는 미하엘이 감사가 아닌 욕구로 곁에 있기를 원한다.

 

그 차이를 미하엘이 스스로 알아채는 날까지, 반 보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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