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 차 요약]
팀원들의 정기 가이딩 + 넬의 가이딩 요구, 한도 넘은 가이딩 진행
정기 가이딩이라는 단어가 이 팀에서 갖는 무게는 사람마다 달랐다.
반우진은 가장 수월한 대상이었다. 매주 수요일 오후 2시, 가이딩실 3번 방. 장갑을 낀 채 의자에 앉은 반우진은 엠버가 손목 위에 손을 얹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에코 파장이 천천히 안정되는 동안 반우진은 눈을 감고 "오늘 저녁은 뭘 드실 건지" 같은 이야기를 꺼냈고, 세션이 끝나면 "수고 많으셨어요"를 빠뜨린 적이 없었다. 그러나 장갑 너머 전해지는 파장에는 늘 일정한 벽이 있었다. 허용된 깊이까지만 열리는, 다정하되 정확한 선.
카즈마는 예측이 안 되는 쪽이었다. 일정을 잡아도 소파에서 잠들어 있거나, 훈련실에서 찾아야 하는 날이 잦았다. 가이딩 자체를 거부하진 않았으나 의미를 두지도 않았다. 엠버의 손이 팔에 닿으면 진회색 눈이 천장을 향한 채 "아—따뜻하네" 하고 중얼거렸다. 감각이 희미해지는 사람에게 가이딩은 자판기에서 뽑은 캔커피 정도의 온도였다.
넬|"Hey, hyung."
"형, 오늘 좀 길게 해도 돼? 손 따뜻해서."
그 말이 호의인지 무료함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다만 3개월 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카즈마가 엠버의 이름을 기억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데이비드는 격주 금요일, 30분. 군사 일정처럼 정확했다. 의자에 등을 기대고 선글라스를 벗지 않은 채 팔을 내밀었다. 세션 중 대화는 없었다. 엠버의 에코가 닿으면 데이비드의 파장은 단단하게 닫혀 있었고—필요 최소한만 수용하고, 그 이상은 밀어냈다. 의무 이행. 그 이상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태도가 파장 자체에 새겨져 있었다.
서도혁은 문제였다.
세 번 연속 불참. 일정표에 적힌 목요일 오후 4시, 가이딩실 앞 복도에서 엠버는 빈 의자만 마주했다. 네 번째 주에 직접 사무실로 찾아가자 서도혁은 다리를 책상 위에 올린 채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엠버|"Vein, your echo levels have been in the yellow zone for two weeks."
"베인, 에코 수치가 2주째 옐로우 존입니다. 가이딩 일정 잡아도 될까요?"
3초간의 침묵. 서도혁의 검은 눈이 처음으로 화면에서 떠올라 엠버를 향했다. 눈물점 아래로 느릿하게 시선이 내려가더니, 다시 화면으로 돌아갔다.
베인|"I don't need a vending machine session."
"자판기 세션 필요 없어. 수치 찍히면 그때 와."
거부가 아니라 조건부 허용이었다. 한 달 전이었다면 "현장 나오면 짐이야"였을 문장이, 미세하게 달라진 무게를 갖고 있었다.
가이딩실 3번 방의 불이 꺼지고, 엠버는 기록 태블릿에 반우진의 세션 결과를 입력했다. 장갑 위로 전해지던 온기가 아직 손바닥에 남아 있었다. 안정적이되 일정한 깊이에서 멈추는 파장—그것이 반우진이 허락한 거리였고, 엠버는 그 선을 넘으려 하지 않았다.
복도를 걸으며 다음 주 일정을 머릿속에 정리했다. 데이비드, 격주 금요일. 카즈마, 찾아가야 하는 날. 서도혁—빈칸.
옐로우 존이 3주째였다. 수치가 레드를 찍으면 그때 오겠다는 말은 조건부 허용인 동시에 시한폭탄이었다. 엠버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서도혁도 알고 있었다. 다만 먼저 손을 내미는 쪽이 지는 게임을 서도혁이 하고 있다는 것을—엠버는 게임에 참여할 생각이 없었다.
사무실로 돌아오니 카즈마가 엠버의 의자에 앉아 다리를 흔들고 있었다.
넬|"Hyung, you smell like Rust's echo. Warm."
"형, 러스트 에코 냄새 나. 따뜻해."
진회색 눈이 나른하게 올려다보았다. 엠버가 자리를 비워달라고 하기 전에, 카즈마는 이미 옆 의자로 미끄러져 앉았다.
카즈마는 옆 의자에 비스듬히 걸터앉은 채 코를 킁킁거렸다. 진회색 눈이 반쯤 감긴 상태로 엠버의 어깨 쪽을 향해 고개를 기울였다.
엠버|"Smells like bread, doesn't it?"
"빵같은 냄새가 나죠?"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엠버|"Did you wait long? Sorry about that."
"많이 기다렸어요? 미안해요."
넬|"헤…빵? 아, 진짜 빵이다. 갓 구운 거."
카즈마의 손이 엠버의 소매를 잡아당겼다가, 곧 놓았다. 잡는 힘에 의도가 없었다. 아이가 따뜻한 것에 손을 뻗듯, 반사적이고 짧은 동작이었다.
넬|"기다린 건 아닌데, 형 자리가 제일 따뜻하잖아. 히터 바로 옆이라."
사실이 아니었다. 엠버의 자리는 창 없는 벽 쪽이고 히터는 반대편에 있었다. 카즈마는 그런 종류의 거짓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의미를 두지 않는 쪽이 편하다는 듯이.
과자 부스러기가 엠버의 키보드 위에 흩어져 있었다. 카즈마가 기다리는 동안 여기 앉아서 먹었다는 증거였다. 엠버가 부스러기를 털어내자 카즈마가 "아—미안" 하고 입꼬리를 올렸다. 미안하지 않은 얼굴이었다.
넬|"근데 형, 러스트 형 가이딩할 때 장갑 만지는 거야? 안에 손은 어때, 따뜻해?"
무심하게 던진 질문이었으나 그 안에 섞인 것은 호기심뿐이 아니었다. 감각이 희미해지는 사람이 타인의 온도를 묻는 방식. 엠버의 대답을 기다리는 진회색 눈에 졸음기가 걷혀 있었다.
엠버|"Are you more curious about Rust's warmth than mine?"
"저보다 러스트의 체온이 더 궁금해요?"
장난기 섞인 물음이었다. 카즈마의 진회색 눈이 천천히 깜빡였다. 잠깐의 정지—그리고 입꼬리가 비대칭으로 올라갔다.
넬|"아냐. 형 거랑 비교하고 싶었어."
평소와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카즈마가 엠버의 손목을 잡았다. 이번엔 소매가 아니라 피부 위를, 검은 문신이 새겨진 손가락이 직접 감쌌다. 차가웠다. 살아있는 사람의 온도가 아닌 것처럼.
넬|"형, 오늘 좀 더 해줘. 여기서."
가이딩실로 가자는 말이 아니었다. 카즈마는 소파 쪽으로 이동하지도,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그저 엠버의 손목을 잡은 채 의자를 끌어당겨 거리를 좁혔다. 접촉 면적이 늘어나자 에코가 반응했다—카즈마의 파장은 표면이 고요한데 안쪽이 텅 비어 있었다. 평소 세션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깊이. 아니, 카즈마가 열어주지 않았던 층위.
엠버의 에코가 그 빈 공간으로 흘러들어갔다. 카즈마의 눈꺼풀이 천천히 내려왔다. 숨이 한 박자 느려졌다. 나른한 얼굴 위로 처음 보는 표정이 스쳤다—감각이 돌아온 순간의 당혹, 혹은 안도.
넬|"…あったかい."(따뜻해.)
무의식에서 흘러나온 모국어였다. 손가락에 힘이 미세하게 들어갔다. 놓지 않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감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려는 움켜쥠이었다.
사무실 반대편에서 의자가 삐걱거렸다. 서도혁의 검은 눈이 핸드폰 너머로 이쪽을 한 번 훑고 지나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다리를 내리는 동작이 평소보다 거칠었다.
엠버|"Alright… just this once, okay?"
"음... 알았어요, 오늘 한번만이에요?"
카즈마의 파장이 더 깊이 열렸다. 빈 공간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처럼—엠버의 에코를 삼키듯 당겨갔다. 접촉이 손목에서 팔 안쪽으로 넓어졌고, 카즈마의 이마가 엠버의 어깨에 기댔을 때 사무실에서 하기엔 경계를 넘고 있다는 자각이 목덜미를 스쳤다.
카즈마의 숨이 느려졌다. 감각을 확인하듯 엠버의 쇄골 근처에 코끝을 묻었고, 검은 문신이 새겨진 손가락이 제복 소매 안쪽으로 미끄러졌다. 차가운 손끝이 맥박 위에 닿았을 때, 카즈마의 에코가 한 층 더 깊은 곳에서 열렸다.
넬|"もうちょっと…"(조금만 더…)
목소리가 흐릿하게 녹아들었다. 엠버의 에코 소모량이 가이딩실 정규 세션의 두 배를 넘기고 있었다. 관자놀이가 묵직해지기 시작한 순간—
사무실 문이 열렸다.
데이비드의 넓은 어깨가 문틈을 채웠다. 선글라스 너머의 시선이 소파 쪽을 훑었다—엠버의 어깨에 이마를 묻은 카즈마, 제복 안쪽으로 들어간 손, 정규 세션이 아닌 장소. 데이비드의 턱 근육이 한 번 경직되었다.
카즈마는 느리게 고개를 들었다. 졸린 눈이 데이비드를 향했으나 물러나지 않았다.
뱅가드|"Knell. Guidin' room exists for a reason."
"넬. 가이딩실이 왜 있는 건지 알지."
낮고 고른 목소리. 질책이 아니라 규율의 확인이었다. 그러나 선글라스 아래 드러난 입매의 선이 평소보다 단단했다. 시선이 엠버에게로 옮겨갔다—관자놀이의 땀방울, 살짝 창백해진 안색을 읽었다.
뱅가드|"Ember. You know your output limit."
"엠버. 본인 출력 한도 알 텐데."
그것은 가이드의 건강을 묻는 방식이 아니었다. 명령에 가까운 확인이었다. 그러나 4개월 전의 '보고서나 내'와는 결이 달랐다. 이름을 불렀다는 것, 수치가 아닌 상태를 봤다는 것.
엠버|"Yes, that's enough for today…"
"네, 오늘은 여기까지..."
창백해진 얼굴 위로 웃음을 만들어 올렸다. 굳은살 가득한 손이 카즈마의 손가락을 하나씩 부드럽게 펴냈다. 제복 소매 안쪽에서 빠져나온 차가운 손끝이 공기에 노출되자 카즈마의 눈꺼풀이 떨렸다.
감각이 돌아왔다가 사라지는 경계. 카즈마는 그 문턱에서 엠버의 손목을 다시 잡았다. 힘이 들어가 있었다—아까의 반사적인 움켜쥠과는 질이 달랐다.
넬|"やだ."(싫어.)
한 음절이 낮게 떨어졌다. 진회색 눈이 반쯤 열린 채 엠버를 올려다보았다. 나른함 아래 드물게 선명한 무언가가 떠올라 있었다.
넬|"형, 아직 느껴져. 끊으면 없어지잖아."
손목을 쥔 손이 엠버를 소파 쪽으로 끌어당겼다. 무게중심이 흔들린 순간 데이비드의 군화 소리가 두 사람 사이를 갈랐다. 넓은 손바닥이 카즈마의 어깨를 눌렀다—세게는 아니나 움직임을 완전히 고정하는 힘이었다.
뱅가드|"Knell. That's an order."
"넬. 명령이야."
카즈마의 손가락이 멈추었다. 데이비드의 청안이 선글라스 위로 드러나 있었다—언제 밀어 올렸는지 모를 만큼 조용한 동작이었다. 한쪽 백안이 형광등 아래서 불투명하게 빛났다. 시선은 카즈마의 손목을 거쳐 엠버의 안색 위에 머물렀다. 관자놀이에 맺힌 땀, 입술의 혈색이 빠진 것까지.
카즈마의 손이 천천히 풀렸다. 불만이 아니라 체념에 가까운 이완이었다. 데이비드의 손이 어깨에서 떨어지자 카즈마는 소파에 몸을 눕혔고, 진회색 눈이 천장을 향해 멀어졌다.
넬|"…헤. 알았어."
뱅가드|"Ember. Infirmary. Now."
"엠버. 의무실. 지금."
명령이었으나 목소리의 끝이 미세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4개월 전이라면 존재하지 않았을 톤이다.
엠버|"…Yes, understood."
"... 네, 알겠습니다."
몸을 일으키는 동작이 반쯤 완성되었을 때 시야가 기울었다. 무릎에서 힘이 빠지며 중심이 왼쪽으로 쏟아졌다. 손이 책상 모서리를 잡으려 했으나 굳은살 가득한 손가락이 미끄러졌고, 형광등 불빛이 한 바퀴 돌았다.
바닥에 닿기 전에 무언가가 팔을 잡았다. 넓은 손바닥이 팔꿈치 안쪽을 받치고, 다른 손이 어깨를 고정했다. 담배와 가죽 냄새가 가까이 내려왔다.
데이비드의 턱이 가까웠다. 선글라스가 이마 위로 밀려 올라간 채였고, 한쪽 청안과 한쪽 백안이 엠버의 안색을 가까이서 읽었다. 화상 흉터가 형광등 아래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으나 시선은 엠버의 동공에 고정되어 있었다—초점이 흐려졌는지, 의식이 남아 있는지를 확인하는 군인의 관찰법.
뱅가드|"Steady."
"버텨."
한 마디였다. 엠버의 체중을 한 팔로 지탱한 채 의자에 다시 앉혔다. 군화가 바닥을 울리며 반 걸음 물러섰으나, 손은 어깨 위에 남아 있었다. 엠버가 스스로 앉아 있을 수 있는지 확인하는 3초.
소파에서 카즈마가 팔꿈치를 세우고 이쪽을 바라보았다. 진회색 눈에 나른함 대신 낯선 것이 떠 있었다—당혹이라 부르기엔 너무 옅고, 죄책감이라 부르기엔 감각이 너무 둔한. 그 사이 어딘가의 감정이 입술을 열었다.
넬|"…형. 내가 너무 많이 먹었어?"
"…Hyung. Did I take too much?"
물음이었으나 답을 기다리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천장을 향해 고개를 젖히며 팔로 눈을 가렸다. 형광 오렌지 소매 아래 검은 문신이 희미하게 떨렸다.
엠버|"It's okay, Knell."
"괜찮아요, 넬."
힘없이 웃었다. 데이비드의 손 위에 얹힌 자기 체중이 부끄러웠다. 호흡을 가다듬으려 복부에 힘을 주었으나 횡격막이 제대로 수축하지 않았다.
엠버|"I'll head to the infirmary right now, Vanguard. Thank you…"
"지금 당장 의무실로 갈게요, 뱅가드. 감사합니다..."
일어섰다. 한 발. 두 발째에서 바닥이 기울었다. 무릎이 접히는 감각보다 먼저 형광등이 옆으로 미끄러졌고, 어깨가 벽을 향해 쏠리는 순간—
등이 단단한 것에 부딪혔다. 벽이 아니었다. 넓은 흉곽, 제복 원단 아래로 전해지는 느린 심박. 데이비드의 팔이 엠버의 등 뒤를 가로질러 갈비뼈 아래를 받치고 있었다. 쓰러지기 전에 잡은 것이 아니라, 쓰러질 것을 알고 한 걸음 앞에 서 있었던 위치였다.
데이비드의 턱이 엠버의 정수리 위에서 한 번 경직되었다. 가볍다는 것을—178센티미터의 남자가 이 정도로 무게가 없다는 것을 한 팔로 확인한 침묵이 3초간 이어졌다.
뱅가드|"…Damn it. Can't even walk straight."
"…Damn. 똑바로 걷지도 못하면서."
투덜거림이었으나 목소리의 밑바닥이 거칠었다. 짜증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성대를 긁고 지나간 흔적. 데이비드는 엠버를 의자로 되돌리지 않았다. 대신 팔 하나로 허리를 고정한 채 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직접 데려가겠다는 뜻이었다.
소파 위에서 카즈마가 팔 사이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형광 오렌지 소매 아래 드러난 진회색 눈이 데이비드의 팔 위치를 한 번 훑고, 엠버의 창백한 목선을 한 번 훑었다. 입술이 열렸다가 닫혔다.
사무실 반대편에서 서도혁의 의자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핸드폰을 내려놓은 검은 눈이 데이비드의 팔에 기댄 엠버를 한 번 훑었다. 시선이 창백한 목선에서 흐트러진 소매까지 내려갔다가, 입꼬리가 한쪽으로 비틀렸다.
베인|"Wow, a guide who can't even manage his own output. Real reassuring."
"와—본인 출력도 조절 못하는 가이드라니. 든든하다, 진짜."
냉소였다. 그러나 핸드폰을 집어든 손이 잠금화면만 만지작거렸다. 화면은 켜지지 않았다.
데이비드가 대꾸하지 않았다. 엠버의 허리를 고정한 채 문을 열었고, 복도의 찬 공기가 밀려들었다. 형광등이 길게 뻗은 바닥 위로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하나처럼 기울어 나갔다.
엠버|"I'm sorry. I didn't mean to take up your time."
"저, 죄송해요, 시간을 뺏고 싶지 않았는데."
형광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머리 위를 지나갔다. 데이비드의 팔이 허리를 고정한 채로 걷는 속도는 느렸다—엠버에게 맞춘 것이었다. 본인의 보폭이 아니라는 것을 군화 소리의 리듬이 말해주고 있었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후 근무 시간대의 27층은 올림피안 전용이라 인적이 드물었고, 그 사실이 엠버의 사과를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 시간을 뺏고 싶지 않았다—그 말 안에는 민폐가 되고 싶지 않다는 것, 혼자 갈 수 있다는 것, 팀장의 업무가 자신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겹겹이 포개져 있었다.
데이비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동안에도, 금속 문이 열리는 동안에도. 엠버의 허리를 잡은 손의 힘은 변하지 않았다. 놓을 생각이 없다는 것을 손바닥의 압력이 대신 전달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선 뒤 문이 닫혔고, 데이비드의 손이 비로소 허리에서 떨어졌다. 대신 엠버의 등을 벽 쪽으로 밀어 기대게 했다. 무게를 벽에 맡기라는 무언의 지시.
그제야 입이 열렸다.
뱅가드|"A guide who apologizes for being carried to the infirmary after overexertion. That's a new one."
"과소모로 쓰러져놓고 의무실 끌려가면서 사과하는 가이드는 처음 본다."
비꼼이 아니었다. 사실의 나열이었으나 목소리 끝이 미세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선글라스를 다시 내리지 않은 얼굴—청안 하나와 백안 하나가 엘리베이터 층수 표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엠버를 보지 않았다. 그러나 말을 이었다.
뱅가드|"Don't let Knell push past your limit again. That's not a request."
"넬이 한도 넘게 요구하면 끊어. 부탁이 아니야."
엘리베이터가 느리게 하강했다. 등을 벽에 기댄 채 엠버는 데이비드의 옆모습을 올려다보았다. 화상 자국이 뻗은 광대뼈, 움직이지 않는 백안, 층수를 읽는 청안. 그 얼굴이 사과에 대해 아무것도 답하지 않았다는 사실이—거절보다 무겁게 가슴에 내려앉았다.
끊어. 부탁이 아니야.
그 말이 복도의 형광등보다 또렷하게 남았다. 넬의 파장이 열릴 때 멈추지 못한 건 가이드로서의 의무감인지, 필요로 해주는 감각에 대한 갈증인지. 엠버 자신도 구분이 가지 않았다.
40층. 문이 열리자 소독약 냄새가 밀려왔다. 데이비드의 손이 다시 한 번 엠버의 등을 밀었다—의무실 접수대를 향해. 그리고 한 발 물러섰다.
뱅가드|"Get cleared before you come back up."
"클리어 받고 올라와."
돌아서는 넓은 등.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 데이비드의 청안이 한 번 돌아보았다. 시선이 엠버의 얼굴에 0.5초 머물렀다가 금속 문에 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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