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12) | 🗓레온드력 406년 11.4 | ⏰06:40 | 🌫️새벽안개·서리 | 📝둘째 날 아침 | 📍하사 저택 2층 동쪽 방 | ♂️ | 🗡️ | 🔵 ]
잠은 얕았다. 낯선 침대의 베개에서 풀 냄새가 났고, 창 너머로 뒤뜰의 숫돌이 서리에 젖어 희끗했다. 안경을 집어 들었을 때 아래에서 금속이 돌에 스치는 소리가 올라왔다. 규칙적이되 느린, 날을 세우는 리듬.
커튼 뒤로 내려다보지 않았다. 출입금지라 했으니 시선도 아껴두기로 한 것이었다.
세면을 마치고 1층으로 내려서자 집사가 식당 문을 열어두고 있었다. 식탁에 접시 하나, 빵과 삶은 달걀. 문 가까운 의자는 여전히 뒤로 빠져 있었고, 그 앞에는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았다.
시어도어|"Could you set a place there as well?" (저쪽에도 하나 놓아주시겠어요?)
집사의 눈이 빈 자리를 보았다가 시어도어에게로 돌아왔다.
"앉지 않으실 겁니다, 기록관님."
시어도어|"That's fine. Just the plate." (괜찮아요. 접시만 놓아주세요.)
집사가 접시를 놓았다. 빵 하나, 달걀 하나. 시어도어는 창가 자리에서 식사를 시작했다. 현관에서 부츠 소리가 났다. 갑옷 방 문이 열리고,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 갑주를 입는 절차였다.
발소리가 식당 앞을 지나갔다. 멈추지 않았다. 다만 보폭이 한 걸음분 짧아졌다가 원래로 돌아왔다. 열린 문 너머로 식탁 위 접시 두 개가 보였을 것이다.
현관문이 닫혔다.
시어도어는 빵을 삼키고 수첩을 꺼냈다. '11월 4일. 식당 앞에서 보폭 변화. 멈추지는 않음.'
INFO
[👕: 시어도어 셔츠·안경 | 로데릭 백은 갑주·흰 망토][🎬: 시어도어 식당 창가석 ↔ 로데릭 현관→출근][💞: 왕명 약혼자][🐉: 🔸][🌸봄까지: 약 139일]💭: 접시가 보였을 것이다. 그것으로 됐다.
식사를 마치고 일어난다. 왕성으로 향할 것이다. 이듬해 봄까지 자신의 직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
[ T(13) | 🗓레온드력 406년 11.4 | ⏰08:15 | 🌫️아침안개·서리 | 📝왕성 방문, 직무 확인 | 📍왕도 중앙 왕궁 기록관실 | ♂️ | 🗡️ | 🔵 ]
시어도어|"I'm here regarding the royal decree — the joint record of the Western Mountain campaign." (왕명에 관해 왔습니다. 서산 토벌의 공동 기록 건으로.)
왕궁 기록관실은 서머싯 가문이 수대에 걸쳐 드나든 곳이었다. 벽면을 채운 양피지 선반의 냄새가 익숙했고, 먼지의 밀도까지 기억했다. 그러나 오늘 시어도어를 맞은 것은 선임 기록관이 아니라 왕실 서기관이었다.
서기관은 마른 손으로 봉인된 서류 한 통을 밀었다. 봉랍에 왕인이 찍혀 있었다.
"서산의 재앙 토벌에 관한 공식 전말을 기록하되, 기사단장 로데릭 홀트의 증언을 바탕으로 할 것. 완성본은 봄 축제 전까지 왕실에 제출. 기록의 열람 권한은 폐하께서 직접 결정하심."
시어도어는 서류를 펼쳤다. 증언 기반. 그 말은 로데릭이 입을 열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밥도 먹지 않는 사람에게 전쟁 이야기를 꺼내라는 왕명.
서기관이 안경 너머로 시어도어를 보았다.
"한 가지 더. 기사단 본부에 전사자 기록이 보관되어 있습니다만, 열람에는 단장의 허가가 필요합니다."
시어도어는 서류를 접어 안주머니에 넣었다. 복도로 나서자 왕궁 중앙 회랑이 길게 뻗어 있었고, 그 끝에 기사단 본부로 향하는 문이 보였다. 문 앞을 지나는 백은 갑주의 뒷모습이 스쳤다. 흰 망토가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따라가지 않았다. 대신 수첩을 꺼내 적었다.
'전사자 명부 열람 — 단장 허가 필요. 증언 확보가 선행 조건.'
INFO
[👕: 시어도어 외투·안경·수첩 | 로데릭 백은 갑주·흰 망토]
[🎬: 시어도어 왕궁 회랑 ↔ 로데릭 기사단 본부 방면]
[💞: 왕명 약혼자—기록 대상]
[🐉: 🔸]
[🌸봄까지: 약 139일]
💭: 증언을 거부하면, 기록은 왕의 것만 남는다.
걸음을 멈추고 닫힌 문을 한참 응시하다 수첩을 덮는다. 그가 먼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기록관의 예의일지도 모르겠으나, 봄까지는 길지 않은 시간이 남았다. 계절이 두번정도 바뀌면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도 끝난다.
시어도어는 고민한다. 다른 건 몰라도 그가 식사를 하는건지, 그것이 제일 궁금했다. 잘 단련된 신체는 일반인과는 다른 것인지, 그가 저택이 아닌 곳에서는 식사를 하는지. 그런 정보라도 필요했다.
[ T(14) | 🗓레온드력 406년 11.4 | ⏰08:30 | 🌫️아침안개·엷은 햇살 | 📝기사단 본부 앞, 식사 여부 | 📍왕궁 기사단 본부 복도 | ♂️ | 🗡️ | 🔵 ]
시어도어|"Does the commander take his meals here?" (단장님은 여기서 식사를 하십니까?)
기사단 본부 복도를 지키던 병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질문이 예상 밖이었던 모양이었다. 시어도어는 수첩을 들어 보였다.
시어도어|"I'm the record-keeper assigned by royal decree. Routine documentation." (왕명으로 배정된 기록관입니다. 일상 기록 절차예요.)
병사의 입이 한 박자 늦게 열렸다.
"식사요? 본부 식당은 쓰시는데, 드시는 건 못 본 지 꽤 됩니다. 빵을 가져가신 적은 있어요. 주머니에 넣으셨는데, 그게 드신 건지는……."
시어도어의 펜이 멈추었다. 빵을 주머니에. 기사단장이 식탁이 아닌 주머니에 빵을 넣는다.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들고 있기 위해서일 수도 있었다. 교범 여백의 흘린 글씨가 떠올랐다. '단장님 빵 사올 것.'
"아, 그리고 기록관님—"
병사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전사자 명패실은 단장님 허가 없이 못 들어갑니다. 혹시 그쪽도 보시려는 거면."
시어도어|"Not yet." (아직은요.)
수첩을 닫고 본부를 나섰다. 왕궁 회랑의 찬 공기가 폐를 채웠고, 안경 위로 입김이 번졌다. 렌즈를 닦으며 적었다.
'빵 — 주머니. 식사 아닌 휴대. 부관의 메모와 연관 가능.'
INFO
[👕: 시어도어 외투·안경·수첩 | 로데릭 백은 갑주·흰 망토]
[🎬: 시어도어 기사단 본부 복도→회랑 ↔ 로데릭 본부 내부]
[💞: 왕명 약혼자—기록 대상]
[🐉: 🔸]
[🌸봄까지: 약 139일]
💭: 빵을 주머니에 넣는 사람. 먹는 것이 아니다.
시어도어는 생각했다. 반쪽짜리 빵도 본인의 식사에 쓰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교범에 있는 이를 기리기 위함일까? 그렇다면, 기리는 장소는? 생각이 뻗어간다. 골똘히 생각에 잠긴 채 걷다보면, 기사단 본부에 다다른다.
[ T(15) | 🗓레온드력 406년 11.4 | ⏰08:50 | 🌫️아침안개·엷은 햇살 | 📝기사단 본부, 빵의 행선지 | 📍왕궁 기사단 본부 입구 | ♂️ | 🗡️ | 🔵 ]
시어도어|"The memorial hall for the fallen — which floor is it on?" (전사자 명패실은 몇 층에 있습니까?)
병사가 다시 나타났다. 아까와 같은 병사였고, 시어도어가 돌아온 것을 의아하게 보았으나 기록관이라는 직함이 질문을 허락했다.
"2층 안쪽입니다만, 아까 말씀드린 대로——"
시어도어|"I won't enter. I just need to know where it is." (들어가진 않을 겁니다. 위치만 알면 됩니다.)
2층 복도의 창으로 안쪽을 볼 수 있었다. 무거운 참나무 문이 닫혀 있었고, 그 앞 바닥에 아주 작은 것이 있었다. 빵 부스러기. 문턱 아래 틈에 끼어 누군가 치우지 못한 것인지, 혹은 아무도 들어가지 않기에 남아 있는 것인지.
시어도어의 발이 멈추었다. 문에 손을 대지 않았다. 대신 무릎을 굽혀 문턱 아래를 보았다. 부스러기는 하나가 아니었다. 오래된 것과 며칠 되지 않은 것이 섞여 있었다. 반복된 궤적이었다.
로데릭::슬픔
수첩에 적었다. '빵 — 전사자 명패실 문 앞. 복수의 부스러기. 식사가 아니라 공양.'
펜을 멈추고 그 단어를 보았다. 공양. 기록관의 어휘가 아니었다. 줄을 그어 지우고 다시 적었다. '반복적 방문 흔적.'
계단을 내려서는데 아래에서 갑주 부딪히는 소리가 올라왔다.
로데릭|"What are you doing here?"
(여긴 왜 왔어.)
녹색 눈이 시어도어의 무릎에 묻은 먼지를 보았다.
INFO
[👕: 시어도어 외투·안경·수첩(무릎 먼지) | 로데릭 백은 갑주·흰 망토]
[🎬: 시어도어 2층 계단 ↔ 로데릭 1층에서 올라오는 중]
[💞: 왕명 약혼자—기록 대상]
[🐉: 🔸]
[🌸봄까지: 약 139일]
💭: 무릎. 봤다.
무릎의 먼지를 툭툭 털어내며 옷매무새를 단정히했다. 무릎을 터는건 일상적인 행동인 것처럼 보일 것이다. 일반적인 사람에게라면. 제게도 왕명이 있어서요. 기한을 확인하러 왔어요. 여기는... 그냥 생각에 잠긴 채 걷다보니 우연히요. 솔직하게 말했다.
[ T(16) | 🗓레온드력 406년 11.4 | ⏰08:55 | 🌫️아침안개·엷은 햇살 | 📝기사단 본부 계단, 조우 | 📍왕궁 기사단 본부 2층 계단 | ♂️ | 🗡️ | 🔵 ]
시어도어|"I have a royal decree of my own to attend to. I came to confirm the deadline. As for being here... I was lost in thought and wandered up by accident."
(제게도 왕명이 있어서요. 기한을 확인하러 왔어요. 여기는… 그냥 생각에 잠긴 채 걷다보니 우연히요.)
솔직한 말이었다. 그래서 나쁜 답이었다. 로데릭의 시선이 무릎에서 올라와 시어도어의 눈에 닿았다. 녹색 눈동자에 의심이 떠오른 것이 아니었다. 이미 끝난 계산이 거기 있었다. 2층, 이 복도, 이 방향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 사람의 표정.
로데릭::분노
갑주 위의 망토가 계단 난간에 스쳤다. 로데릭은 시어도어 옆을 지나 두 계단을 올랐고, 참나무 문 앞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문턱 아래 부스러기는 시어도어가 본 그대로였다.
등이 돌아왔다.
로데릭|"Lost in thought."
(생각에 잠겨서.)
반복이었으나 어조가 달랐다. 확인도 비난도 아닌, 무언가를 깎아내는 소리.
로데릭|"You knelt. There's dust on both knees, not one. A man who stumbles catches himself on one side."
(무릎을 꿇었잖아. 양쪽 다 먼지가 묻었어. 발이 걸린 사람은 한쪽만 짚지.)
시어도어가 털어낸 것은 겉의 먼지였고, 로데릭이 읽은 것은 자세였다. 기사의 눈이었다. 전장에서 쓰러진 사람의 무릎이 한쪽인지 양쪽인지를 세어본 적 있는 눈.
로데릭이 계단을 내려왔다. 시어도어와 같은 단에 섰을 때, 머스크 향이 차가운 금속 냄새에 눌려 희미했다.
로데릭|"The record-keeper's decree doesn't cover this floor. Get out."
(기록관의 왕명에 이 층은 포함 안 돼. 나가.)
INFO
[👕: 시어도어 외투·안경·수첩(무릎 먼지 흔적) | 로데릭 백은 갑주·흰 망토]
[🎬: 시어도어 2층 계단 ↔ 로데릭 같은 단·정면]
[💞: 왕명 약혼자—기록 대상]
[🐉: 🔸]
[🌸봄까지: 약 139일]
💭: 양쪽 무릎. 실수했다.
... 죄송해요. 저는 그저 당신이 식사를 하시는지 걱정됐어요. 불쾌했다면 미안합니다. 깔끔한 사과. 그리고 비굴하지는 않은 자세. 그것이 시어도어 서머싯이다. 그는 귀족으로 자란 것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는 예의바르고 올곧은 사람이다. 오히려 어린 시절을 평민가에서 보낸 이라서 가능한 걸지도 모른다.
[ T(17) | 🗓레온드력 406년 11.4 | ⏰08:57 | 🌫️아침안개·엷은 햇살 | 📝사과, 그리고 침묵 | 📍왕궁 기사단 본부 2층 계단 | ♂️ | 🗡️ | 🔵 ]
시어도어|"...I'm sorry. I was simply worried whether you've been eating. If I've offended you, I apologize."
(…죄송해요. 저는 그저 당신이 식사를 하시는지 걱정됐어요. 불쾌했다면 미안합니다.)
등을 구부리지 않았다. 시선도 내리지 않았다. 안경 너머로 로데릭의 녹색 눈을 마주본 채 사과했다. 비굴하지 않은 사과가 갑주 위의 남자에게 닿는 방식은 독특했다. 반박할 구석을 찾지 못한 사람의 턱이 미세하게 경직되었다.
로데릭::당황
로데릭의 왼손이 허벅지 옆에서 한 번 쥐어졌다 풀렸다. 검 자루도, 방패 손잡이도 없는 손이 허공에서 힘을 줄 곳을 찾지 못한 것이었다.
계단에 선 두 사람 사이로 2층 복도의 찬 공기가 흘렀다. 참나무 문 아래 부스러기들이 여전히 거기 있었고, 로데릭은 그것을 등 뒤에 두고 서 있었다. 지키는 자세였다. 시어도어에게서가 아니라, 시어도어의 걱정이라는 단어에서.
침묵이 세 박자 이어졌다. 로데릭이 먼저 시선을 끊었다. 시어도어의 눈이 아닌 안경테 옆을 보았고, 그것은 눈을 피한 것이 아니라 시선을 놓을 곳을 고른 것이었다.
로데릭|"Don't kneel in front of a door that isn't yours, record-keeper. It's unseemly."
(남의 문 앞에서 무릎 꿇지 마. 기록관. 꼴 사나워.)
시어도어를 지나쳐 계단을 내려갔다. 갑주가 부딪히는 소리가 멀어졌다. 걱정이라는 말에 대한 반박은 끝내 없었다.
INFO
[👕: 시어도어 외투·안경·수첩 | 로데릭 백은 갑주·흰 망토]
[🎬: 시어도어 2층 계단 ↔ 로데릭 1층으로 퇴장]
[💞: 왕명 약혼자—기록 대상]
[🐉: 🔸]
[🌸봄까지: 약 139일]
💭: 걱정. 그 단어를 반박하지 못했다.
... 결국 식사를 했는지는 알 수 없었네. 조용히 중얼거렸다. 문 앞의 부스러기들이 눈에 띄었다. 이대로면 쥐든, 벌레든 꼬일 텐데. 고민하다가 간단한 청소도구를 찾아본다. 최대한 그와 마주치지 않는 선에서.
[ T(18) | 🗓레온드력 406년 11.4 | ⏰09:10 | 🌫️아침안개 걷히는 중 | 📝전사자 명패실 앞 청소 | 📍왕궁 기사단 본부 2층 복도 | ♂️ | 🗡️ | 🔵 ]
시어도어|"...So I never found out whether he's eaten."
(…결국 식사를 했는지는 알 수 없었네.)
중얼거림이 빈 계단에 스며들었다. 발소리는 이미 1층 저편으로 사라진 뒤였다.
참나무 문 앞으로 돌아왔다. 부스러기가 문턱 틈새에 말라붙어 있었다. 오래된 것은 색이 바래 바닥 돌과 거의 구분이 되지 않았고, 며칠 안 된 것만이 연한 밀색을 유지했다. 이대로 두면 쥐가 먼저 올 것이고, 벌레가 뒤따를 것이었다.
복도 끝 물자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짧은 빗자루 하나와 쓰레받기. 시어도어는 갑주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왔다. 무릎을 꿇었다. 이번에는 한쪽만.
빗자루 끝으로 부스러기를 쓸었다. 바랜 것들이 먼저 일어났고, 밀색 것들이 뒤따랐다. 쓰레받기 위에 모인 양은 한 줌이 되지 않았다. 몇 번이나 왔는지를, 그 작은 양이 오히려 정확하게 말하고 있었다. 한 번에 많이가 아니라, 여러 번에 조금씩.
쓰레받기를 비우고 빗자루를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문턱은 깨끗했다. 누군가 청소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누구인지는 모르는 채로.
본부를 나서는데 입구 병사가 고개를 기울였다.
병사|"Record-keeper, sir — the commander went toward the east drill yard, if you're looking for him."
(기록관님, 혹시 찾으시는 거면 — 단장님은 동쪽 연병장 쪽으로 가셨습니다.)
INFO
[👕: 시어도어 외투·안경·수첩(무릎 한쪽 먼지) | 로데릭 백은 갑주·흰 망토]
[🎬: 시어도어 기사단 본부 출구 ↔ 로데릭 동쪽 연병장]
[💞: 왕명 약혼자—기록 대상]
[🐉: 🔸]
[🌸봄까지: 약 139일]
💭: 한쪽 무릎만 꿇었다. 이번에는.
고마워요. 하지만 찾는 건 아닙니다. 그냥 산책 중이었어요. 병사에게 담담히 답했다. 그에게 작게 웃어주었다.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갈등했다. 그를 지금 찾으러가면 분명 화를 낼 텐데. 이번에도 생각에 잠긴 채 발걸음이 향하는 곳으로 간다.
[ T(19) | 🗓레온드력 406년 11.4 | ⏰09:25 | ☁️구름 사이 햇살 | 📝동쪽 연병장, 발걸음이 향한 곳 | 📍왕궁 동쪽 연병장 외곽 | ♂️ | 🗡️ | 🔵 ]
시어도어|"I'm not looking for him. Just taking a walk."
(찾는 건 아닙니다. 그냥 산책 중이었어요.)
병사에게 웃어 보인 입꼬리가 왕궁 회랑을 걷는 동안 천천히 내려왔다. 발은 출구로 가야 했고, 머리도 그것을 알았다. 그러나 생각이 자꾸 문턱 아래 부스러기의 빛깔로 돌아갔고, 돌아갈수록 발은 동쪽으로 꺾였다.
연병장 외곽의 회랑은 기둥 사이가 넓어 안이 보였다. 시어도어는 기둥 그늘에 멈추었다.
로데릭::멀리서 응시
넓은 사각 마당에 사람이 한 명이었다. 백은 갑주가 아침 햇살에 눈부시지 않은 것은 연마를 게을리해서가 아니라 구름이 자주 끼는 탓이었다. 롱소드를 천천히 들어올려 정면을 벤 뒤, 왼손이 허공에서 무언가를 잡는 형태로 올라왔다가 — 내려왔다. 방패가 없었다. 그런데도 왼팔은 막는 자세를 반복했다. 없는 것을 들고 있는 사람의 팔이 가장 정확한 각도를 그렸다.
수첩을 꺼내지 않았다. 대신 기둥에 어깨를 기대고 지켜보았다. 검이 세 번 더 허공을 갈랐고, 왼손은 세 번 모두 같은 높이에서 멈추었다. 방패의 무게를 기억하는 근육이었다.
로데릭이 검을 내렸다. 고개가 회랑 쪽으로 돌았다.
로데릭|"You're a terrible liar, record-keeper. 'Just a walk' always ends up here."
(거짓말을 못 하는군, 기록관. '그냥 산책'이 꼭 여기서 끝나.)
INFO
[👕: 시어도어 외투·안경·수첩 | 로데릭 백은 갑주·흰 망토·롱소드]
[🎬: 시어도어 연병장 외곽 기둥 그늘 ↔ 로데릭 연병장 중앙]
[💞: 왕명 약혼자—기록 대상]
[🐉: 🔸]
[🌸봄까지: 약 139일]
💭: 기둥 뒤에 숨은 줄 알았나. 그림자가 바닥에 나와 있었다.
... 머쓱한 얼굴로 기둥 밖으로 나온다. 죄송해요. 답을 듣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나 봅니다. 하지만 정말 의도하고 온 건 아니에요. ... 식사 하셨어요?
[ T(20) | 🗓레온드력 406년 11.4 | ⏰09:28 | ☁️구름 사이 햇살 | 📝연병장, 같은 질문 | 📍왕궁 동쪽 연병장 | ♂️ | 🗡️ | 🔵 ]
시어도어|"...I'm sorry. I suppose not hearing your answer bothered me. But I really didn't come here on purpose. ...Have you eaten?"
(…죄송해요. 답을 듣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나 봅니다. 하지만 정말 의도하고 온 건 아니에요. …식사 하셨어요?)
기둥 밖으로 나선 시어도어의 그림자가 연병장 모래 위로 길게 누웠다. 머쓱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고, 감추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이 사람의 방식이었다.
로데릭::비웃음
로데릭의 검 끝이 모래를 찍었다. 왼손이 허벅지 옆으로 내려갔다. 아까의 방패 자세가 사라지고 남은 것은 갑주 입은 사내가 기둥 그늘에서 걸어나온 안경잡이를 내려다보는 구도뿐이었다.
로데릭|"Twice."
(두 번.)
시어도어의 펜이 움직이기도 전에 로데릭이 이었다.
로데릭|"You've asked that twice in one morning. Is that what the king's record-keeper does — count another man's meals?"
(오늘 아침에만 두 번째야. 왕실 기록관이란 게 남의 밥숟가락을 세는 일이었나.)
검을 어깨에 걸치듯 올렸다. 무겁지 않다는 듯이, 혹은 무거운 것에 익숙한 팔이 그렇게 보이게 하는 것이었다. 녹색 눈이 시어도어의 안경 너머를 훑고 지나갔다. 무릎을 확인하는 시선이었으나, 이번에는 먼지가 한쪽뿐이라는 것까지 읽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로데릭|"Go home, record-keeper. Your walk's over."
(돌아가, 기록관. 산책은 끝났잖아.)
등을 돌렸다. 연병장 반대편으로 걸어가는 보폭은 일정했고, 흰 망토가 낮은 바람에 한 번 들렸다. 식사를 했는지에 대한 대답은 이번에도 없었다.
INFO
[👕: 시어도어 외투·안경·수첩 | 로데릭 백은 갑주·흰 망토·롱소드]
[🎬: 시어도어 연병장 외곽 ↔ 로데릭 연병장 반대편으로 퇴장]
[💞: 왕명 약혼자—기록 대상]
[🐉: 🔸]
[🌸봄까지: 약 139일]
💭: 두 번. 세고 있었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그냥 정말... 걱정에서 뻗은 생각이에요. 어제 복도에서 손을 대지 않은 수프를 봤거든요. ... 돌아갈게요. 이따 봬요.
[ T(21) | 🗓레온드력 406년 11.4 | ⏰09:30 | ☁️구름 사이 햇살 | 📝수프, 걱정, 퇴장 | 📍왕궁 동쪽 연병장 | ♂️ | 🗡️ | 🔵 ]
시어도어|"You might not believe me, but it really was just... a thought that grew out of concern. I saw the untouched soup in the hallway last night. ...I'll head back. See you later."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그냥 정말… 걱정에서 뻗은 생각이에요. 어제 복도에서 손을 대지 않은 수프를 봤거든요. …돌아갈게요. 이따 봬요.)
돌아서는 등 뒤로 모래 밟히는 소리가 멈추었다. 로데릭이 걸음을 멈춘 것이었다. 시어도어는 돌아보지 않았다. 회랑 기둥 사이로 빠져나가며 연병장의 공기가 복도의 찬 돌 냄새로 바뀌는 경계를 지났다.
로데릭::당황
로데릭은 연병장 한가운데 서 있었다. 검 끝이 모래에 닿은 채. 수프라는 단어가 갑주 안쪽 어딘가에 걸려 빠지지 않는 것처럼 고개가 한쪽으로 미세하게 기울었다가 돌아왔다. 숟가락 자국이 없었다는 것을 이 남자는 모른다. 본인이 남긴 것이 아니라 본인에게 올려보내진 것이었으므로. 그러나 기록관은 알았고, 그것을 걱정이라 불렀다.
왼손이 검 자루 위에서 한 번 조여졌다. 이번에는 풀리지 않았다.
시어도어가 왕궁 정문을 나설 때 등 뒤에서 검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다시 시작되었다. 아까보다 빨랐다. 무언가를 떨쳐내려는 사람의 속도였다.
INFO
[👕: 시어도어 외투·안경·수첩 | 로데릭 백은 갑주·흰 망토·롱소드]
[🎬: 시어도어 왕궁 정문→귀로 ↔ 로데릭 연병장 검술 재개]
[💞: 왕명 약혼자—기록 대상]
[🐉: 🔸]
[🌸봄까지: 약 139일]
💭: 수프. 봤다는 것이다. 복도에서.
하루를 보내고, 저녁. 그 사이에 사건이 있었다면 서술. 없다면 저녁으로 스킵.
[ T(22) | 🗓레온드력 406년 11.4 | ⏰18:45 | 🌑해질녘·서리 | 📝둘째 날 저녁, 식탁 위 접시 | 📍하사 저택 1층 식당 | ♂️ | 🗡️ | 🔵 ]
왕궁에서의 나머지 오전은 기록관실에서 보냈다. 서기관에게 출근 일정을 확인받았고, 당분간은 저택에서 초안 작업을 하되 주 2회 왕궁에 경과를 보고하라는 답을 얻었다. 서머싯 가문의 서고 열람 권한은 유지되었으나, 전사자 관련 자료는 기사단장 재가 후라는 단서가 다시 붙었다.
저녁. 식당에 앉았을 때 맞은편 자리에는 아침에 놓아둔 접시가 그대로였다. 빵이 마른 공기에 갈라져 있었고, 달걀은 껍질째 차가웠다. 집사가 그것을 치우려 하자 시어도어가 고개를 저었다.
시어도어|"Leave it, please. I'll clear it myself later."
(놔두세요. 나중에 제가 치울게요.)
저녁 식사를 마칠 무렵 현관문이 열렸다. 부츠가 복도를 지나 계단으로 올라갔다. 식당 앞에서 멈추지 않았으나 — 보폭이 달랐다. 아침보다 무거웠다. 갑주를 벗지 않은 채 돌아온 것인지, 혹은 하루가 그만큼 무거웠는지.
2층에서 갑주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정적.
시어도어는 맞은편 접시의 마른 빵을 치우고 새 빵 하나를 올려놓았다. 내일 아침, 이것이 사라져 있기를.
로데릭::우울
자정 가까이, 유리문 열리는 소리가 올라왔다. 뒤뜰. 어젯밤과 같은 시각이었다.
INFO
[👕: 시어도어 셔츠·안경 | 로데릭 검은 상의]
[🎬: 시어도어 식당→2층 동쪽 방 ↔ 로데릭 2층→뒤뜰]
[💞: 왕명 약혼자—기록 대상]
[🐉: 🔸]
[🌸봄까지: 약 139일]
💭: 빵을 바꿔놓았다. 눈치챌 것이다.
창가에 의자를 두고 앉아 내려다본다. 오늘도 불은 꺼두었다.
[ T(23) | 🗓레온드력 406년 11.4 | ⏰23:50 | 🌑밤·서리 | 📝창가, 둘째 밤 | 📍하사 저택 2층 동쪽 방 | ♂️ | 🗡️ | 🔵 ]
의자를 끌어다 놓은 것은 어젯밤의 실수를 고친 것이었다. 서서 내려다보면 서리 낀 유리에 윤곽이 비쳤으나, 앉으면 어깨 아래가 창틀에 가려졌다. 불 꺼진 방, 창틀 아래의 눈.
오늘은 더 오래 걸렸다. 유리문이 열린 것은 자정에 가까웠고, 부츠가 돌을 밟는 소리가 나기까지 숨 세 번이 지났다. 숫돌 옆에 앉는 것이 아니라 서 있었다. 검을 들지 않았다. 맨손이었다. 왼손이 허벅지 옆에서 쥐어졌다 풀리는 것이 서리 너머로 보였다.
로데릭::우울
오래 서 있었다. 시어도어의 안경 너머로 흐릿한 윤곽이 미동 없이 박혀 있었고, 마른 정원의 나뭇가지가 바람에 한 번 흔들렸을 때 비로소 고개가 움직였다. 위를 올려다본 것이었다. 2층, 동쪽 방 창.
시어도어는 숨을 멈추었다. 불은 꺼져 있었고, 자신의 위치는 창틀 아래였다. 보이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로데릭의 시선은 정확히 그 창에 머물렀다가 — 떨어졌다.
돌아 들어가는 등이 어젯밤보다 빨랐다. 유리문 닫히는 소리. 계단을 올라가는 부츠. 서쪽 방 문이 닫혔다.
그리고 복도를 가로질러, 식당 쪽에서 무언가 작은 소리가 났다. 접시 위의 것이 움직이는 소리였는지, 아니었는지.
시어도어는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확인하러 내려가면 그가 알 것이었다. 아침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INFO
[👕: 시어도어 잠옷·안경 | 로데릭 검은 상의]
[🎬: 시어도어 동쪽 방 창가 의자 ↔ 로데릭 뒤뜰→서쪽 방]
[💞: 왕명 약혼자—기록 대상]
[🐉: 🔸]
[🌸봄까지: 약 139일]
💭: 올려다봤다. 불이 꺼진 창을.
... 들켰나? 아니, 안 보였을 것이다. 그랬어야하는데...
조용히 의자에서 일어나 침대로 향한다. 내일은 왕성에는 갈 일이 없으니 이 저택을 조금 더 둘러봐야한다. 잠에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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