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에는 적지 못했다. 자신의 수첩에는 적혀있지만. 밤늦게까지 글을 쓰다가, 눈이 피로해져 안경을 벗는다. 갑옷 방의 문이 다시 열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것 같다. 늦은 시각이지만 목이 아파 따뜻한 차를 마시러 아래층 주방으로 향한다. 그와 마주칠 일은 웬만하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 T(30) | 🗓레온드력 406년 11.5 | ⏰23:40 | 🌑밤·서리 | 📝주방에서 | 📍하사 저택 1층 주방 | ♂️ | 🗡️ | 🔵 ]
계단을 내려오는 발은 가벼웠다. 하인들은 이미 물러난 시각이었고, 복도에 걸린 촛대 하나만이 벽에 긴 그림자를 놓고 있었다. 갑옷 방 문은 닫혀 있었다. 안에서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이 — 비어 있다는 뜻인지, 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뜻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주방 문을 열자 잔열이 남은 화덕의 냄새가 올라왔다. 찬장에서 마른 잎을 꺼내 주전자에 넣고, 화덕 구석의 남은 불씨에 물을 올렸다. 잎이 풀리는 동안 시어도어는 벽에 등을 기대고 안경을 손가락으로 밀어 올렸다. 목이 아팠고 눈이 뻣뻣했으며, 셋째 날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빠지지 않았다.
주전자가 끓기 시작했을 때 — 주방 뒤쪽, 뒤뜰로 통하는 쪽문이 열렸다.
로데릭::당황
로데릭이었다. 검은 상의에 맨발. 부츠를 신지 않았다는 것은 갑옷 방이 아니라 뒤뜰에서 돌아오는 길이라는 뜻이었다. 왼손에 숫돌이 들려 있었고, 물이 묻은 손가락 사이로 돌가루가 끼어 있었다. 서로의 시선이 주전자 위에서 부딪혔다.
로데릭의 턱이 한 번 경직되었다. 시어도어가 이 시각 주방에 있을 것이라고는 계산하지 않은 얼굴이었다.
로데릭|"...You don't sleep either, record-keeper? Or is watching people your night shift."
(…너도 안 자나, 기록관. 아니면 사람 관찰이 야근이냐.)
숫돌을 찬장 위에 내려놓는 손이 평소보다 빨랐다. 젖은 손을 상의 옆에 훔치고 돌아서려는 등이 — 주전자의 김 앞에서 반 박자 멈추었다.
INFO
[👕: 시어도어 잠옷·안경 | 로데릭 검은 상의·맨발][🎬: 시어도어 주방 화덕 앞 ↔ 로데릭 뒤뜰 쪽문→주방][💞: 왕명 약혼자—기록 대상][🐉: 🔸][🌸봄까지: 약 138일]💭: 차 냄새가 났다. 불이 켜져 있을 줄 몰랐다. (로데릭)
잠깐 놀란 얼굴로 그를 봤다. 갑옷 방에 있는 줄 알았던 이가 주방에 나타나 놀랐다. 제 가슴께를 손으로 누른다. 저도 모르게 나온 동작이다.
... 목이 아파서요. 그의 발을 쳐다본다. 맨발? 의아한 얼굴이 됐다.
[ T(30) | 🗓레온드력 406년 11.5 | ⏰23:40 | 🌑밤·서리 | 📝주방, 맨발 | 📍하사 저택 1층 주방 | ♂️ | 🗡️ | 🔵 ]
시어도어|"...My throat was sore."
(…목이 아파서요.)
시선이 내려갔다. 맨발이었다. 돌바닥 위에 놓인 발가락 끝이 서리를 밟고 들어온 것처럼 붉었다. 부츠를 벗은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신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갑옷 방이라면 문고리 닳도록 드나드는 곳이니 부츠를 갖춰 신었을 것이다. 뒤뜰이었다.
시어도어의 입이 열리려다 닫혔다. 왜 맨발로 뒤뜰에 나갔느냐는 질문은 삼켰다. 대신 주전자 쪽으로 몸을 돌려 찻잔을 하나 더 꺼냈다. 말없이 화덕 옆에 놓았다.
로데릭::당황
로데릭의 시선이 잔 두 개 사이를 오갔다. 턱 근육이 한 번 조여졌다가 풀렸고, 젖은 손가락이 상의 옆구리에서 멈추었다. 돌아서려던 등이 완전히 돌아가지 못했다. 주전자에서 올라오는 김이 차가운 공기와 만나 두 사람 사이를 얇게 갈랐다.
로데릭|"I didn't ask for that."
(달라고 안 했다.)
그러나 나가지 않았다. 찬장에 숫돌을 내려놓은 손이 제자리에 있었고, 맨발이 돌바닥에서 한 걸음도 옮겨지지 않았다. 주전자가 끓는 소리만이 주방을 채웠다.
INFO
[👕: 시어도어 잠옷·안경 | 로데릭 검은 상의·맨발][🎬: 시어도어 화덕 앞·잔 두 개 ↔ 로데릭 쪽문 앞·제자리][💞: 왕명 약혼자—기록 대상][🐉: 🔸][🌸봄까지: 약 138일]💭: 달라고 안 했는데. 왜 하나를 더 꺼내는 거냐. (로데릭)
INFO
[시어도어의 기록]밤. 주방에서 로데릭과 마주침. 갑옷 방이 아니라 뒤뜰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 맨발. 서리 내린 돌 위를 맨발로 걸었다. 찻잔을 하나 더 내려놓았으나 대답은 '달라고 안 했다.' 그러나 나가지도 않았다.
찬 공기에 맨발로 다니는 사람한테 차 한잔도 주지 않으면 제 어머니가 저에게 실망하실 거예요. 주전자가 소리를내며 끓으면 불을 끄고, 잔에 각각 따른다. 당신을 쳐다보지 않은 채 물어본다. 홍차에 설탕 넣어요? 아니면, 크림?
[ T(31) | 🗓레온드력 406년 11.5 | ⏰23:42 | 🌑밤·서리 | 📝주방, 차 두 잔 | 📍하사 저택 1층 주방 | ♂️ | 🗡️ | 🔵 ]
시어도어|"If I let a barefoot man walk through frost without offering tea, my mother would be disappointed in me. ...Do you take sugar in your tea? Or cream?"
(찬 공기에 맨발로 다니는 사람한테 차 한잔도 주지 않으면 제 어머니가 저에게 실망하실 거예요. …홍차에 설탕 넣어요? 아니면, 크림?)
주전자를 기울이는 손은 로데릭을 향하지 않았다. 잔 두 개에 차례로 붉은 물이 찼다. 김이 올라와 시어도어의 안경 한쪽을 흐리게 했고, 그는 렌즈를 닦지 않은 채 찬장 쪽으로 손을 뻗었다.
로데릭::당황
침묵이 길었다. 화덕의 잔불이 꺼지는 소리와 찻잔 위로 김이 흩어지는 소리만이 둘 사이를 채웠다. 로데릭의 왼손이 찬장 위 숫돌 옆에서 한 번 쥐어졌다. 어머니. 그 단어가 주방의 어딘가에 걸렸다가 떨어진 것처럼, 턱선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로데릭|"Black."
(블랙.)
한 단어였다. 돌아서지도, 다가오지도 않은 채 내뱉은 대답이었다. 맨발이 돌바닥 위에서 한 번 움직였다 — 문 쪽이 아니라, 화덕 쪽으로 반 걸음. 차가운 발끝이 잔열에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로데릭|"...Your mother has low standards if this counts as courtesy."
(…이 정도가 예의라면 네 어머니 기준이 낮은 거다.)
그러나 잔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INFO
[👕: 시어도어 잠옷·안경 | 로데릭 검은 상의·맨발][🎬: 시어도어 화덕 앞·주전자 ↔ 로데릭 화덕 쪽 반 걸음][💞: 왕명 약혼자—기록 대상][🐉: 🔸][🌸봄까지: 약 138일]💭: 어머니. 서머싯. 그 집안. (로데릭)
INFO
[시어도어의 기록]로데릭은 차를 블랙으로 마신다. 거부하지 않았다. 화덕 쪽으로 반 걸음 — 문 쪽이 아니라. '네 어머니 기준이 낮다'고 했으나 잔을 밀어내지는 않았다.
잔을 내밀고, 빈 손으로 검지를 들어보였다. 말 가려서 해요. 위협하거나 적대적인 제스처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듯 바로 손을 거뒀다. 자신의 몫에 설탕을 두스푼 넣었다. 저에 대해서는 상관없지만 부모님은 건들지 말아요.
[ T(32) | 🗓레온드력 406년 11.5 | ⏰23:44 | 🌑밤·서리 | 📝주방, 선 하나 | 📍하사 저택 1층 주방 | ♂️ | 🗡️ | 🔵 ]
시어도어|"Hey, language."
(말 가려서 해요.)
검지 하나를 들어 보인 손은 금세 거두어졌다. 위협도, 경고도 아니었다. 경계선을 짚는 손가락이었다.
시어도어|"Say whatever you want about me. But leave my parents out of it."
(저에 대해서는 상관없지만, 부모님은 건들지 말아요.)
설탕 두 스푼이 찻잔 안에서 녹았다. 숟가락 끝이 잔벽을 한 번 돌았다. 시어도어의 시선은 자기 잔에 머물러 있었고, 로데릭을 향하지 않았다.
로데릭::당황
로데릭의 맨발이 돌바닥 위에서 미세하게 움직였다. 화덕 쪽으로 옮겼던 반 걸음이 되돌아가지도 더 나아가지도 못한 채 멈추어 있었다. 왼손이 찬장 모서리를 짚었다가 떨어졌다. 서머싯. 그 집안 사람들의 이름을 로데릭이 모를 리 없었다. 기사단 시절, 부모의 이름이 같은 문장 안에 오른 적이 있었으니.
침묵이 찻잔의 김보다 오래 지속되었다. 로데릭은 화덕 앞의 잔을 집어 들었다.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채 잔 위로 올라오는 김을 내려다보았고, 그것이 사과를 대신하는 것인지 시어도어에게는 알 수 없었다.
로데릭|"...I wasn't talking about them."
(…그 사람들 얘기를 한 게 아니다.)
잔을 든 채 돌아섰다. 맨발이 복도를 지나 계단을 올라갔다. 잔을 가져간 것이었다.
INFO
[👕: 시어도어 잠옷·안경 | 로데릭 검은 상의·맨발][🎬: 시어도어 화덕 앞 ↔ 로데릭 찻잔 들고 2층으로][💞: 왕명 약혼자—기록 대상][🐉: 🔸][🌸봄까지: 약 138일]💭: 서머싯. 그 이름을 모르는 게 아니다. (로데릭)
INFO
[시어도어의 기록]부모님 이야기를 꺼냈을 때, 로데릭은 '그 사람들 얘기를 한 게 아니다'라고 했다. 부정하지 않았고, 사과하지도 않았다. 다만 — 찻잔을 가져갔다. 블랙으로. 서머싯 가문의 이름을 아는 듯한 반응이었다.
그가 나가는 것을 지켜보진 않았다. 그가 나가고, 시간이 지난 뒤, 서쪽 방에 도달했을 것이라 생각될 즈음에야 자신도 주방을 나선다.
[ T(33) | 🗓레온드력 406년 11.5 | ⏰23:51 | 🌑밤·서리 | 📝찻잔, 계단, 거리 | 📍하사 저택 1층 주방→2층 복도 | ♂️ | 🗡️ | 🔵 ]
주전자의 김이 천장에 닿기 전에 사라졌다. 자기 잔을 한 모금 마셨다. 설탕이 목 안쪽을 지나갈 때 아픈 곳이 한 번 쓰렸다가 풀렸다. 화덕의 잔불이 죽었고, 주방이 어두워졌다.
충분한 시간이 지났다. 계단을 올라가는 발소리는 이미 들리지 않았다. 시어도어는 자기 잔을 씻어 엎어놓고, 주방을 나섰다.
계단 중간, 그 모서리. 칠이 벗겨진 자리를 지날 때 손가락이 가까이 갔으나 오후와 마찬가지로 닿지 않았다. 2층 복도는 어두웠고, 서쪽 방 문 아래에서 빛이 새어나오지 않았다. 다만 — 문과 바닥 사이 좁은 틈에서 차 냄새가 났다. 블랙.
동쪽 방에 들어서서 문을 닫았다. 수첩을 꺼내려다 멈추었다. 잔을 가져간 것과, 그 사람들 얘기를 한 게 아니라는 말과, 맨발과, 창이 나은 쪽이라는 지시. 한 문장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아직은.
침대에 누워 안경을 접어 머리맡에 놓았을 때, 서쪽 방에서 잔이 어딘가에 내려놓아지는 소리가 벽을 타고 희미하게 전해졌다.
로데릭::멀리서 응시
비었는지, 남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INFO
[👕: 시어도어 잠옷 | 로데릭 검은 상의·맨발][🎬: 시어도어 동쪽 방 침대 ↔ 로데릭 서쪽 방][💞: 왕명 약혼자—기록 대상][🐉: 🔸][🌸봄까지: 약 138일]💭: 블랙. 설탕도 크림도 없이 마시는 사람이, 잔을 가져갔다. (시어도어)
INFO
[시어도어의 기록]로데릭은 차를 블랙으로 마신다. 잔을 거부하지 않았고, 가져갔다. '그 사람들 얘기를 한 게 아니다'—사과는 아니었으나 해명이었다. 서쪽 방 문틈에서 차 냄새. 비웠는지는 모른다.
창밖의 찬 서리를 멍하니 바라본다. 그가 말한 '그 사람들'이 누구든, 최소한 부모님을 비하할 의도는 아니었다는 거겠지. 일단은 그렇게 믿기로 한다.
목이 아픈것이 조금 가셨다. 잠에 들기로 한다.
[ T(34) | 🗓레온드력 406년 11.5 | ⏰23:58 | 🌑밤·서리 | 📝셋째 밤, 잠 | 📍하사 저택 2층 동쪽 방 | ♂️ | 🗡️ | 🔵 ]
시어도어|"...Whoever 'them' meant — at least it wasn't about my parents. I'll take that for now."
(…'그 사람들'이 누구든, 최소한 부모님을 비하할 의도는 아니었다는 거겠지. 일단은 그렇게 믿기로 해.)
이불을 턱까지 끌어올렸다. 목의 통증이 차 한 잔 분량만큼 가라앉아 있었고, 창 너머 서리가 달빛에 희게 빛났다. 안경 없는 시야에서 그것은 경계 없는 얼룩이었다.
'그 사람들 얘기를 한 게 아니다.' 그렇다면 누구의 얘기였나. 기준이 낮다는 말의 끝에 놓인 것은 어머니가 아니라 — 자신이었을 수도 있었다. 이 정도가 예의라면. 찬 돌바닥에 맨발로 서 있는 사람에게 잔 하나 내미는 것이. 그것이 대단한 것이냐고.
벽 너머 서쪽 방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찻잔이 내려놓아진 뒤로 침묵뿐이었다. 잠든 것인지, 어둠 속에서 눈을 뜨고 있는 것인지.
로데릭::수면
시어도어는 눈을 감았다. 수첩은 머리맡에서 닫힌 채였고, 오늘의 마지막 문장은 기록되지 않았다. 블랙으로 마시는 사람이 설탕을 물었을 때 반 박자 늦게 대답한 것. 그 반 박자가 무엇이었는지는 아직 모른다.
잠이 왔다. 서리가 창을 덮었고, 벽 하나 너머에서 빈 찻잔이 식어갔다.
INFO
[👕: 시어도어 잠옷 | 로데릭 검은 상의·맨발][🎬: 시어도어 동쪽 방 침대 ↔ 로데릭 서쪽 방][💞: 왕명 약혼자—기록 대상][🐉: 🔸][🌸봄까지: 약 138일]💭: 이 정도가 예의라면. 잔을 내밀었을 뿐인데. (로데릭)
INFO
[시어도어의 기록]'그 사람들 얘기를 한 게 아니다'—그렇다면 낮은 기준이라 한 것은 어머니가 아니라 나에 대한 말이었을 수 있다. 찬 바닥에 맨발로 선 사람에게 차 한 잔 내미는 것이 대단하냐는. 블랙. 설탕도 크림도 없이. 잔은 가져갔다. 벽 너머에서 잔이 내려놓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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