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35) | 🗓레온드력 406년 11.6 | ⏰07:15 | ❄️흐림·서리 | 📝넷째 날 아침, 잔의 행방 | 📍하사 저택 2층 동쪽 방 | ♂️ | 🗡️ | 🔵 ]
눈을 떴을 때 목의 통증은 거의 가셔 있었다. 창 너머 서리가 어제보다 두꺼웠고, 하늘이 회색이었다. 안경을 집어 쓰자 방의 윤곽이 선명해졌다.
세면을 마치고 복도로 나서는데 서쪽 방 문이 열려 있었다. 처음이었다. 문틈이 아니라 완전히. 안이 보였다 — 군용 침대만한 폭의 간이침상, 벽에 걸린 망토 하나, 창턱에 아무것도 없는 서쪽 창. 그리고 침상 옆 바닥에 놓인 찻잔. 비어 있었다.
계단을 내려오자 현관 쪽에서 부츠 소리가 났다. 이미 나가는 중이었다. 갑주의 금속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닫혔고, 시어도어가 식당에 도착했을 때 맞은편 접시 위의 빵은 — 반쪽이 남아 있었다. 반을 먹은 것이었다.
하녀가 아침을 차려주며 말했다.
하녀|"He left earlier than usual today, sir. And — he said to tell you the armor chamber will be unlocked until noon."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나가셨어요, 도련님. 그리고 — 갑옷 방을 정오까지 열어두겠다고 전하랍니다.)
INFO
[👕: 시어도어 셔츠·안경 | 로데릭 백은 갑주·흰 망토]
[🎬: 시어도어 1층 식당 ↔ 로데릭 왕궁 출근]
[💞: 왕명 약혼자—기록 대상][🐉: 🔸]
[🌸봄까지: 약 137일]
💭: 반만 먹었다. 문을 열어뒀다. 둘 다 처음이다. (시어도어)
INFO
[시어도어의 기록]넷째 날. 서쪽 방 문이 처음으로 열려 있었다. 찻잔이 비어 있었다—어젯밤의 블랙. 빵은 반쪽이 남아 있었다. 갑옷 방을 정오까지 열어두겠다는 전언. 출입금지라 했던 곳을 여는 것이 무엇의 대가인지. 찻잔 한 잔의 대가치고는 크다.
...갑옷 방을? 그에게 무슨 심경의 변화가 생긴 걸까. 알겠어요. 우선 식사할게요. 식사를하며 생각에 빠진다.
[ T(36) | 🗓레온드력 406년 11.6 | ⏰07:28 | ❄️흐림·서리 | 📝빵 반쪽과 열쇠 없는 문 | 📍하사 저택 1층 식당 | ♂️ | 🗡️ | 🔵 ]
시어도어|"The armor chamber? ...Understood. I'll eat first."
(갑옷 방을? …알겠어요. 우선 식사할게요.)
포크가 접시 위에서 잠시 멈추었다. 맞은편 자리에 반쪽짜리 빵이 놓여 있었다. 어제까지 그 접시는 비어 있거나, 시어도어가 올려둔 빵이 통째로 사라지거나 했다. 반을 남겼다는 것은 먹다 만 것이 아니라 반만 먹겠다고 결정한 사람의 흔적이었다. 칼로 자른 단면이 깨끗했다.
갑옷 방. 사흘 전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이 저택에서 자신의 것이라 부른 유일한 두 장소 — 뒤뜰과 갑옷 방. 그곳을 정오까지 열어두겠다는 전언은 초대가 아니었다. 로데릭은 그런 단어를 쓸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그렇다면 무엇인가.
식사를 마치고 찻잔을 내려놓았다. 설탕 두 스푼. 어젯밤 주방에서 블랙을 마시겠다던 사람이, 설탕이 있냐고 물은 반 박자의 침묵이, 아직 문장이 되지 못한 채 머리 한쪽에 걸려 있었다.
하녀가 맞은편 접시를 치우려다 시어도어의 시선을 알아채고 손을 멈추었다.
하녀|"He cut it himself this morning, sir. Used the bread knife — first time I've seen him touch anything in the kitchen besides water."
(오늘 아침에 직접 자르셨어요, 도련님. 빵칼을 쓰시더라고요 — 물 말고 주방에서 뭘 만지시는 건 처음 봤어요.)
INFO
[👕: 시어도어 셔츠·안경 | 로데릭 백은 갑주·흰 망토][🎬: 시어도어 식당 식사 중 ↔ 로데릭 왕궁 출근][💞: 왕명 약혼자—기록 대상][🐉: 🔸][🌸봄까지: 약 137일]💭: 빵칼을 쓴 건 처음이다. 주방에서 물 말고 뭔가를 만진 것도. (로데릭)
INFO
[시어도어의 기록]넷째 날 아침. 빵을 반만 먹었다—칼로 직접 자른 단면. 하녀에 따르면 로데릭이 주방에서 물 이외의 것을 만진 것은 처음. 갑옷 방을 정오까지 열어두겠다는 전언. 사흘 전 '이 저택에서 내 것'이라 했던 장소를 여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아직 모른다. 초대는 아닐 것이다. 그는 그런 단어를 쓰지 않는다.
그런가요? 가볍게 수긍하고 냅킨으로 입가를 닦는다. 이내 일어나서 갑옷방으로 향한다.
[ T(37) | 🗓레온드력 406년 11.6 | ⏰07:42 | ❄️흐림·서리 | 📝갑옷 방, 열린 문 | 📍하사 저택 1층 갑옷 방 | ♂️ | 🗡️ | 🔵 ]
시어도어|"I see."
(그런가요.)
냅킨을 접어 놓고 일어섰다. 복도를 지나 갑옷 방 앞에 섰을 때, 사흘 전 로데릭의 등이 막아섰던 그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자물쇠가 빠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창이 없었다. 복도에서 새어드는 빛만이 방의 윤곽을 드러냈고, 먼지가 빛줄기 안에서 천천히 돌았다. 갑옷 방이라 불렸으나 갑주는 하나뿐이었다. 벽에 걸린 백은 갑주 — 아니, 여벌이었다. 왕궁에 입고 나간 것과 동일한 형태이되 어깨받이에 칼자국이 있었다. 수선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 아래 긴 탁자. 위에 놓인 것들.
검유, 숫돌, 가죽끈 여분. 그리고 탁자 끝에 가지런히 놓인 두루마리 하나. 왕궁 인장이 찍혀 있었다. 전사자 명부. 집사가 말했던 것 — 매일 밤 이곳에서 그것을 읽는다던.
두루마리 옆에 작은 나무 상자가 있었다. 뚜껑이 닫혀 있었으나 자물쇠는 없었다. 시어도어의 손이 멈추었다. 열어두겠다는 말이 이 상자까지를 포함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탁자 다리 밑, 바닥에 긁힌 자국. 의자를 같은 자리에 반복해서 당긴 흔적이었다. 매일 밤,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것을 읽었다는 뜻이었다.
INFO
[👕: 시어도어 셔츠·안경 | 로데릭 백은 갑주·흰 망토(왕궁)][🎬: 시어도어 갑옷 방 탁자 앞 ↔ 로데릭 왕궁][💞: 왕명 약혼자—기록 대상][🐉: 🔸][🌸봄까지: 약 137일]💭: 열어두라 했으니 볼 테면 보라는 뜻이겠지. 그 이상은 아니다. (로데릭)
INFO
[시어도어의 기록]갑옷 방. 여벌 갑주—어깨받이에 칼자국, 수선 없음. 탁자 위 검유·숫돌·가죽끈 여분. 전사자 명부 두루마리(왕궁 인장). 뚜껑 닫힌 나무 상자, 자물쇠 없음. 탁자 다리 밑 바닥 긁힘—의자를 같은 자리에 반복해서 당긴 흔적. 매일 밤 같은 자리에서 명부를 읽었다는 물리적 증거.
내부를 충분히 살펴보고, 작은 나무상자도 열어본다.
[ T(38) | 🗓레온드력 406년 11.6 | ⏰07:48 | ❄️흐림·서리 | 📝나무 상자, 이름들 | 📍하사 저택 1층 갑옷 방 | ♂️ | 🗡️ | 🔵 ]
방 안의 공기는 금속기름과 가죽, 그리고 오래 환기되지 않은 석조 벽의 냉기가 섞여 있었다. 시어도어는 탁자 앞 의자를 당기지 않았다. 대신 서서, 전사자 명부 두루마리의 인장을 확인했다. 왕궁 행정부 직인. 봉인이 다시 말린 흔적이 여러 겹이었다 — 매번 펼치고, 매번 다시 말았다는 뜻이었다.
나무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기사단 배지들이 들어 있었다. 청색 문장이 새겨진 은빛 원형 — 하나가 아니었다. 스물넷. 바닥에 가지런히 눕혀져 있었고, 각각의 뒷면에 이름이 각인되어 있었다. 상자 안쪽 나무에 긁힌 자국이 보였다. 손톱이 아니라 칼끝이었다. 맨 위의 배지를 집어 뒤집었을 때, 각인된 이름.
할렌.
시어도어의 엄지가 글자 위에서 멈추었다. 서고의 교범에서 본 필적 — '빵 사올 것'이라 적었던 그 사람의 이름이, 스물넷 개의 배지 중 맨 위에 놓여 있었다. 가장 마지막에 올려놓았다는 뜻이거나, 매번 꺼내 보고 다시 맨 위에 놓았다는 뜻이었다.
상자 바닥, 배지들 아래에 접힌 종이 한 장이 깔려 있었다. 꺼내지 않았다. 열어두겠다는 말이 어디까지인지의 경계가, 거기였다.
뚜껑을 닫고 원래 자리에 놓았다. 할렌의 배지를 맨 위에, 같은 방향으로.
INFO
[👕: 시어도어 셔츠·안경 | 로데릭 백은 갑주·흰 망토(왕궁)][🎬: 시어도어 갑옷 방 탁자 앞 ↔ 로데릭 왕궁][💞: 왕명 약혼자—기록 대상][🐉: 🔸][🌸봄까지: 약 137일]💭: 스물넷. 이름이 스물넷. 할렌이 맨 위에. (시어도어)
INFO
[시어도어의 기록]나무 상자 안에 기사단 배지 24개. 뒷면에 각각 이름 각인. 맨 위에 할렌—서고 교범의 필적 주인. 상자 안쪽에 칼끝으로 긁힌 자국. 명부의 봉인은 여러 차례 풀렸다 다시 말린 흔적. 상자 바닥에 접힌 종이 한 장—열지 않았다. 열어두겠다는 말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으므로.
혹시몰라 제 손을 타지 않도록 손수건을 통해 물건들을 집었다. 그가 유일하게 자신의 것이라고 했던 것들이다. 명부를 제대로 다시 봤다.
[ T(38) | 🗓레온드력 406년 11.6 | ⏰07:52 | ❄️흐림·서리 | 📝명부, 스물넷의 이름 | 📍하사 저택 1층 갑옷 방 | ♂️ | 🗡️ | 🔵 ]
손수건을 낀 손가락으로 두루마리의 봉인을 풀었다. 밀랍이 여러 차례 눌린 자국 위로 시어도어의 손은 조심스러웠다. 자신의 지문이 남지 않도록. 이 사람이 매일 밤 손으로 쥐고 읽었을 종이 위에 다른 손자국이 묻는 것이 — 기록관으로서가 아니라, 어떤 직감으로 꺼려졌다.
명부가 펼쳐졌다.
행정부의 정자체로 기재된 이름 스물넷. 계급, 출신지, 사망 추정 일시. 마지막 열에 '유품 수령인'이 기입되어야 할 칸이 대부분 비어 있었다. 가족이 없거나, 가족이 수령을 거부했거나. 그 빈칸들 옆에 다른 필적이 있었다. 행정부의 정자체가 아닌, 거칠고 짧은 글씨. 로데릭의 것이었다.
이름 옆에 적힌 것들은 메모였다. '왼쪽 어깨 오래된 상처', '식사 전 기도하던 버릇', '고향에 여동생'. 명부에 기재되지 않는 종류의 것들. 행정이 기록하지 않는 것을 이 사람이 채워 넣고 있었다.
할렌의 이름 옆은 비어 있었다. 메모가 없었다. 적을 것이 너무 많아서인지, 적을 수 없어서인지.
두루마리를 원래대로 말아 봉인 자리에 맞추어 놓았다. 손수건을 접었다. 의자의 긁힌 자국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 매일 밤 이 자리에 앉아, 죽은 부하들의 이름 옆에 산 사람만이 아는 것들을 적는 사람.
기록관이 기록하지 못하는 기록이 여기 있었다.
INFO
[👕: 시어도어 셔츠·안경 | 로데릭 백은 갑주·흰 망토(왕궁)][🎬: 시어도어 갑옷 방 탁자 앞 ↔ 로데릭 왕궁][💞: 왕명 약혼자—기록 대상][🐉: 🔸][🌸봄까지: 약 137일]💭: 할렌 옆은 비어 있었다. 적을 수 없었던 건지, 적으면 끝나는 것 같아서인지. (시어도어)
INFO
[시어도어의 기록]전사자 명부 열람. 이름 24인, 계급·출신지·사망 추정 일시 기재. 유품 수령인 칸 대부분 공란—가족 부재 또는 수령 거부. 로데릭의 필적으로 이름 옆에 메모: '왼쪽 어깨 오래된 상처', '식사 전 기도하던 버릇', '고향에 여동생'. 행정 기록에 없는 것들을 본인이 채워넣고 있었다. 할렌의 이름 옆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기록관이 기록하지 못하는 기록이 이곳에 있다.
이건... 순간 숨이 턱 막혔다. ... 이사람은, 그들을 그리워하고 있는 건가. ...아니, 그들을 잊지 않으려는 거다.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기억들은 휘발되니까. 입가를 손으로 가린다. 한동안 미동도 하지 못한 채 생각을 정리했다.
어느정도 생각을 정리하자 문득 갑옷으로 시선이 닿는다.
[ T(39) | 🗓레온드력 406년 11.6 | ⏰07:56 | ❄️흐림·서리 | 📝갑주의 칼자국, 기록관의 손 | 📍하사 저택 1층 갑옷 방 | ♂️ | 🗡️ | 🔵 ]
시어도어|"This is..."
(이건…)
입을 가린 손가락 사이로 내쉰 숨이 차가웠다. 기록이 휘발을 막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었다. 서머싯 가문이 대를 이어 해온 일이 그것이었고, 시어도어 자신이 믿는 것이 그것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행정부가 매기지 않는 칸에, 기록관이 아닌 손으로, 죽은 사람들의 버릇과 상처와 가족을.
손수건 너머로 만졌던 두루마리를 제자리에 놓은 뒤에도 손이 허공에 남아 있었다. 입가를 가렸다. 숨이 손등에 부딪혀 돌아왔다.
'왼쪽 어깨 오래된 상처.' 행정부의 칸에는 사망 추정 일시만이 적혀 있었다. 그 옆에 로데릭이 채워넣은 글씨는 산 사람의 습관이었다. 죽은 사람의 기록이 아니라, 살아 있을 때의 것. 식사 전 기도하던 버릇. 고향에 여동생. 명부가 지우는 것들을 이 사람이 매일 밤 되살려 적고 있었다.
기록관의 아들로서 알고 있었다. 기록되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된다. 휘발된다. 이 사람은 그것을 — 본능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왕궁이 이름과 계급과 날짜만 남기는 동안, 어깨의 흉터와 기도의 버릇과 여동생의 존재를 지키려 한 것이다. 기록관이 아닌 사람이.
할렌 옆의 빈칸이 떠올랐다. 가장 많이 알고 있었을 이름 옆에 아무것도 적지 못한 사람의 손을.
생각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숨을 고르고 손을 내렸을 때, 시선이 벽의 여벌 갑주에 닿았다.
어깨받이의 칼자국. 손수건을 낀 채 가까이 섰다. 한 줄이 아니었다. 비스듬히 내려친 궤적 하나, 옆에서 찌른 궤적 하나. 수선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 수선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갑주를 입고 있었을 때의 궤적이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왕궁에 입고 나간 갑주에는 흠 하나 없었다. 그것은 새것이었고, 이것은 그날의 것이었다.
갑주 안쪽, 가슴받이 뒷면에 손수건 너머로 손끝이 닿았다. 무언가가 긁혀 있었다. 새겨진 것이 아니라 칼끝으로 그은 것 — 세로줄 스물넷.
세로줄은 글자가 아니었다. 수를 세는 방식이었다.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이 글자 대신 줄을 긋는 경우는 하나뿐이었다. 적을 여유가 없었거나, 이름을 적으면 견딜 수 없었거나.
INFO
[👕: 시어도어 셔츠·안경 | 로데릭 백은 갑주·흰 망토(왕궁)][🎬: 시어도어 갑옷 방 여벌 갑주 앞 ↔ 로데릭 왕궁][💞: 왕명 약혼자—기록 대상][🐉: 🔸][🌸봄까지: 약 137일]💭: 이름을 적으면 견딜 수 없었던 거다. 그래서 줄만 그었다. (시어도어)
INFO
[시어도어의 기록]여벌 갑주—토벌 당시의 것으로 추정. 어깨받이에 비스듬한 참격 1, 측면 자상 1. 수선하지 않음. 가슴받이 안쪽에 칼끝으로 그은 세로줄 24개. 이름이 아닌 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이 글자 대신 수만 세는 경우—적을 여유가 없었거나, 이름을 적으면 견딜 수 없었거나.
그 홈을 어루만졌다. 그는 자신의 방식으로 기록하고 있었다. 혼자서, 아주 외롭게. ... ... 나머지 것들도 살펴봤다. 검유, 숫돌, 가죽끈 여분.
[ T(39) | 🗓레온드력 406년 11.6 | ⏰08:01 | ❄️흐림·서리 | 📝검유와 숫돌, 기록관의 손 | 📍하사 저택 1층 갑옷 방 | ♂️ | 🗡️ | 🔵 ]
홈을 어루만지던 손수건 너머의 손끝이 떨렸다. 스물넷. 줄 하나하나가 균일하지 않았다. 처음 몇 줄은 깊고 힘이 실렸으나 뒤로 갈수록 얕아졌다. 칼끝을 쥔 손이 흔들렸거나, 세는 것 자체가 버거워졌거나. 마지막 줄은 거의 긁힌 자국에 가까웠다.
손을 떼고 탁자 위의 물건들로 시선을 옮겼다.
검유 병은 반쯤 줄어 있었다. 뚜껑이 느슨했다 — 매일 쓰는 사람의 습관이었다. 숫돌은 중앙이 오목하게 패여 있었고, 그 곡면의 깊이가 사흘이나 열흘이 아닌 수년의 것이었다. 가죽끈 여분은 세 묶음. 한 묶음의 끝이 잘린 채 남아 있어 최근에 교체했음을 알 수 있었다. 검의 손잡이를 감는 용도였다.
모두 전투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전투는 끝났다. 이것은 의식이었다. 매일 밤 이 방에 앉아 명부를 읽고, 검유를 바르고, 숫돌에 날을 세우는 것. 쓸 곳 없는 검을 손질하는 사람의 루틴은 기도에 가까웠다.
뒤뜰에서 검을 들고 앉아 있던 밤이 떠올랐다. 숫돌 옆에 앉아 검을 손질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버티듯 앉아 있던 등. 그것이 여기서 시작되는 것이었다.
방을 나서기 전 한 번 더 돌아보았다. 빛줄기 안의 먼지가 아까와 같은 속도로 돌고 있었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시어도어가 손수건으로 만진 흔적조차 남지 않도록 갑주의 위치를 확인하고, 문을 반쯤 열린 상태 그대로 두었다.
하녀|"Sir — will you need anything for the afternoon? The master said the chamber locks again at noon."
(도련님, 오후에 필요한 것이 있으신지요? 주인님께서 정오에 다시 잠그신다 하셨어요.)
INFO
[👕: 시어도어 셔츠·안경 | 로데릭 백은 갑주·흰 망토(왕궁)]
[🎬: 시어도어 갑옷 방 문 앞 ↔ 로데릭 왕궁]
[💞: 왕명 약혼자—기록 대상]
[🐉: 🔸]
[🌸봄까지: 약 137일]
💭: 잠그신다, 고 했다. 열어둔 것이 아니라 빌려준 것이다. (시어도어)
INFO
[시어도어의 기록]
검유 병 반쯤 소진, 뚜껑 느슨—매일 사용. 숫돌 중앙 오목하게 패임—수년간의 마모. 가죽끈 여분 3묶음, 1묶음 최근 절단 흔적(검 손잡이 교체용 추정). 갑주 안쪽 세로줄 24개—처음 줄은 깊고 마지막은 얕음. 칼끝을 쥔 손이 흔들렸거나 세는 것 자체가 한계에 닿았거나. 이 방의 물건들은 전투 장비가 아니라 의식의 도구다. 쓸 곳 없는 검을 매일 손질하는 사람의 루틴.
오후요. ... ... 아뇨, 괜찮아요. 오후엔 잠시 외출할 거예요.
제 방에 돌아가 수첩에 내용을 적으며 생각을 정리한다. 이것들을 보고서에 쓸 수는 없다. 다만... 자신에게는 허락된 내용이니 변질되지 않도록, 기록할 의무가 자신에게 있다.
[ T(40) | 🗓레온드력 406년 11.6 | ⏰08:14 | ❄️흐림·서리 | 📝기록의 무게, 외출 준비 | 📍하사 저택 2층 동쪽 방 | ♂️ | 🗡️ | 🔵 ]
시어도어|"No, I'm fine. I'll be going out for a while in the afternoon."
(아뇨, 괜찮아요. 오후엔 잠시 외출할 거예요.)
방에 돌아와 수첩을 펼쳤다. 펜촉이 종이에 닿기 전, 한참을 멈추었다. 보고서에 실릴 문장이 아니었다. 행정부가 배지를 돌려주지 않은 것인지, 로데릭이 수령한 것인지조차 확인되지 않은 사실들이었고 — 무엇보다 이것은 허락받아 본 것이었다. 열어두겠다는 말 안에 담긴 범위가 어디까지든, 그 범위 안의 것을 왕궁의 서류에 옮기는 일은 시어도어가 할 수 있는 종류의 배반이 아니었다.
다만 기록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기록되지 않으면 휘발된다. 로데릭이 그것을 알아서 명부 옆에 글씨를 채워넣었듯이, 시어도어도 알았다. 수첩의 이 페이지는 보고서가 아니라 — 증인의 기록이었다.
적었다. 배지 스물넷. 할렌이 맨 위에. 갑주 안쪽 세로줄의 깊이가 달라지는 것. 숫돌의 오목한 곡면. 검유 병의 느슨한 뚜껑. 기도에 가까운 루틴. 그리고 할렌 옆의 빈칸.
펜을 놓고 창밖을 보았다. 서리가 낀 뒤뜰의 마른 정원이 내려다보였다. 동쪽 방 — 뒤뜰을 향하는 창. 그가 이 방을 배정한 이유를 처음 왔을 때는 몰랐었다.
코트를 걸치고 계단을 내려서는데, 현관 옆 벽에 기대어 놓인 것이 보였다. 우산이었다. 어제까지 없던 자리에. 하녀가 복도 끝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하녀|"Oh — the master left that before he went out. Said the sky looked like snow."
(아, 주인님께서 나가시면서 놓고 가셨어요. 하늘이 눈 올 것 같다고.)
INFO
[👕: 시어도어 코트·안경 | 로데릭 백은 갑주·흰 망토(왕궁)]
[🎬: 시어도어 현관 ↔ 로데릭 왕궁]
[💞: 왕명 약혼자—기록 대상]
[🐉: 🔸]
[🌸봄까지: 약 137일]
💭: 하늘이 눈 올 것 같다고 했을 뿐이다. 그것뿐이다. (로데릭)
INFO
[시어도어의 기록]
갑옷 방의 물건들을 수첩에 기록함—보고서가 아닌 증인의 기록으로. 현관에 우산이 놓여 있었다. 하녀에 따르면 로데릭이 외출 전 두고 간 것. '하늘이 눈 올 것 같다'고. 갑옷 방을 열어둔 것, 빵을 반만 먹은 것, 우산을 놓고 간 것. 어느 것도 직접 건네지 않았다. 전부 자리를 비운 뒤에 남겨둔 것이다.
... 홀트 경이요? 우산을 보다가 챙긴다. 현관을 나서며 하늘을 봤다.
[ T(41) | 🗓레온드력 406년 11.6 | ⏰08:32 | ❄️흐림·낮은 구름 | 📝우산, 하늘, 외출 | 📍하사 저택 현관 | ♂️ | 🗡️ | 🔵 ]
시어도어|"...Sir Holte?"
(…홀트 경이요?)
하녀는 고개만 끄덕이고 부엌 쪽으로 사라졌다. 우산은 낡았다. 손잡이의 니스가 벗겨져 있었고 접히는 부분의 천이 한 군데 수선되어 있었다. 새것이 아니었다. 로데릭 본인의 것이거나, 저택에 하나뿐인 것이거나. 어느 쪽이든 자신은 갑주를 입고 나갔으므로 비를 맞아도 상관없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듯 했다.
현관을 나서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회색 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고, 서쪽 산맥 능선이 보이지 않았다. 눈 올 것 같다는 판단은 정확해 보였다. 기사의 습관 — 하늘을 읽는 것. 전장에서 날씨는 생사였을 테니. 우산을 쥔 손에 닳은 니스의 감촉이 전해졌고, 시어도어는 그것을 한동안 내려다보았다.
우산을 접은 채 걸었다. 아직 내리지 않았으므로. 왕도 외곽의 돌길이 서리에 젖어 있었고, 부츠 밑에서 얇은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갑옷 방의 세로줄 스물넷이 발걸음마다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
갑옷 방을 열어둔 것. 빵을 반만 먹은 것. 하늘이 눈 올 것 같다는 말. 전부 자리를 비운 뒤에 남겨진 것들이었다. 직접 건네면 그것이 무엇이 되는지를 이 사람은 두려워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 건네는 법을 잊은 것일 수도.
우산을 접어 든 채 왕도의 돌길을 걸었다. 아침 시장이 열리기 시작한 거리에 수레바퀴 소리와 짐승의 울음이 섞였다. 코트 안주머니에 수첩이 있었고, 그 안에 스물넷 줄의 깊이가 달라지는 기록이 적혀 있었다. 보고서에는 쓸 수 없는 것들.
발걸음이 왕궁 쪽이 아니라 시장 쪽으로 향했다.
INFO
[👕: 시어도어 코트·안경·낡은 우산 | 로데릭 백은 갑주·흰 망토(왕궁)]
[🎬: 시어도어 왕도 거리 ↔ 로데릭 왕궁]
[💞: 왕명 약혼자—기록 대상]
[🐉: 🔸]
[🌸봄까지: 약 137일]
💭: 건네는 법을 잊은 것인지, 건네면 그것이 무엇이 될지를 두려워하는 것인지. (시어도어)
INFO
[시어도어의 기록]
우산—낡은 것, 니스 벗겨진 손잡이, 천 한 군데 수선. 자기 것을 두고 간 것. 빵·갑옷 방·우산, 전부 자리를 비운 뒤에 남겨둔 것이다. 직접 건네지 않는다. 이 사람은 자기가 무언가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상대가 아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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